트립도기 Trip Doggy - 털북숭이 친구 페퍼와 30일 유럽여행
권인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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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트립 도기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이 책이 으레 외국 책이라고 생각했다. 유럽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그랬고, 책 제목도 외국 책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한참을 표지 속 활짝 웃고 있는 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옆에 자리한 ,사진 권인영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한국 책이었구나! 다시 말하자면 한국 책이었다는 사실에 놀란 것 보다 한국에서 거주중인 저자가 반려견 페퍼와 유럽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었다. 요즘은 너도 나도 가는 게 유럽 여행이라지만,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반려견과 함께 하는 유럽 여행이라니!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라, 두려움 반 설렘 반 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다.

 

프롤로그와 인트로만 읽었을 뿐인데 내가 다 유럽 여행을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 책을 읽는 법을 조금 달리해서 읽기로 했다. 여행 책을 읽을 때 종종 써먹는 방법인데, 책을 나눠 읽기 괜찮다고 생각되면 분량을 적당히 나눠서, 며칠에 걸쳐 책을 읽는 것이다. 이 책은 프롤로그-인트로-네 개의 파트-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루에 한 파트씩 읽기에 아주 적당했고, 정말 그렇게 나눠 읽었다. 나 역시 저자와 페퍼 뒤를 따라 여행하는 기분으로 말이다.

 

털북숭이 친구 페퍼와 함께하는 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 여행 이야기를 한 줄로 표현하자면 대체로 맑고 때때로 흐린 이야기였다.

 

유럽 사람들은 동물에게 호의적이고, 동물에게도 아름답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고 쓰는 것 같다. 유럽에서는 동물과 함께인 모습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나는 그것이 부러웠다. 동물들도 아름다운 것들을 인간과 함께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 순간을 존중하는 그들이 고마웠다. 덕분에 페퍼와 내가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도 쌓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p.107)

 

페퍼와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들 틈에 실제로 궂은 날씨가 끼어들기도 하고, 예상외의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숙소에서 생기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라던가, 여행지를 옮기면서 기온 차이로 인해 페퍼가 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일들이 그렇다. 사람끼리 떠난 여행에서 벌어진 일이어도 쉽지 않은 일. 그럴 때마다 저자는 당황하거나 짜증내기보다 다른 좋은 상황으로 빠르게 전환하기 위해 노력했고, 때때로 페퍼와 저자를 도와주는 사람들 덕분에 힘을 얻는다. 멋진 풍경만큼이나 반짝반짝 빛나는 여행의 순간이었다.

 

함께 케이블카와 버스를 탔던 사람들 모두 페퍼를 어찌나 흐뭇하게 쳐다보던지. 페퍼는 어느새 대중교통 탑승 고수가 되어 있었다. 버스에 타면 내 발밑에 자리 잡고 척 엎드리고, 기차를 타면 내 옆에 딱 앉아서 기다린다. 처음에 기차를 탔을 때는 맨바닥이 어색하고 불편한지 자꾸 의자 위로 올라오려 했지만, 이제는 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세상모르고 잘 정도가 됐다. 개들도 새로운 경험을 하며 성장하는 건 사람이랑 똑같은가 보다. (p.158)

 

때때로 흐린 여행이 대체로 맑은 여행일 수 있었던 건, 이 여행이 페퍼와 함께하는 여행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어느 때보다 서로를 위하고, 반짝이는 곳에서 해맑게 뛰어 놀며,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한결 따뜻했던 여행. 자신에게 이 여행이 잊을 수 없는 기억이듯 저자의 예쁜 친구 페퍼에게도 이 여행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남을 기억임이 분명하다.

 

 

 

p.s. 반려견의 출국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 숙소를 예약하는 과정과 반려동물 동반 가능 호텔을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도 덧붙여 있고, 반려동물의 비행기 탑승 기준, 반려동물과 호텔을 사용할 때의 에티켓, 해당 여행지에서 반려견이 뛰어놀 수 있는 공원 정보 등등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가 많아서, 반려견과의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좋은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밑줄 친 구절들

 

어디를 가던 개와 함께인 사람들을 만나면 더 반갑고, 더 멋있다고 느낀다. 특히 파리 사람들은 유독 페퍼를 예쁘게 봐줬다. 한 남자는 페퍼에게 다가와 한참을 어루만지며 떠나질 못했고, “내가 페퍼를 집으로 데려가면 안 되겠지?”라는 조금 무서운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페퍼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페퍼가 사는 한국의 말을 알려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만득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말해주니(만득이는 페퍼가 특히 사랑하는 장난감 이름이다) 옆에서 떠나지 않고 어색하고 어설픈 발음으로 만득이라는 말을 계속하며 페퍼를 향해 열정적 구애를 이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페퍼가 내 눈에만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어디서도 사랑받는 존재라는 생각에 내가 칭찬을 받는 것처럼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페퍼를 향한 파리 사람들의 웃음, 애정, 따뜻한 손길, 사랑스러운 눈길까지 모두 기억에 남는다. 우리의 파리 여행은 그들을 만났기에 한결 따뜻했다. (p.70)

    

 

마음이 여유로워지니 올 때는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주인이 채소를 고르는 동안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는 푸들, 가게 안에서 페퍼를 보고 인사하기 위해 뛰어오는 사람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이들의 행복한 표정, 낡고 오래되었지만 그래서 더 가치 있는 건물들, 할머니 할아버지 때부터 늘 그곳에 있었을 것 같은 세월이 느껴지는 상점들까지. 길에는 아름다운 로마의 풍경이 가득했다. 그제야 멈춰 서서 페퍼의 사진도 찍고, 에쁜 풍경을 남기기 위한 행동을 해봤다. 아름다운 곳에서는 어김없이 페퍼의 사진을 찍고 싶어지는데, 이게 바로 엄마의 마음인가 싶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함께 하는 시간들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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