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만났을까요. 당신과 나 사이의 깊고 조용한 공간, 어느 날 나비 한 마리가 꽃잎처럼 날아들어 작은 떨림을 만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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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읽었던 책의 페이지를 소리 내어 읽은 적이 있어요. 당신이 앉았던 의자에 앉아 당신이 기댔던 등의 온도를 느끼려 눈을 감은 적도 있지요. 당신이 마셨던 머그잔의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쓰다듬은 적도 있어요. 동백나무 아래를 걸어가던 당신의 뒷모습,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향을 향해 구부러지던 길, 그 길을 따라 당신 발자국 위에 내 발을 조심스럽게 포갰던 날. 그게 사랑이었던 것일까. 마술처럼 바다를 덮쳐오던 노을, 그 앞에서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일, 설명 안 해도 되는 일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어쩌면 그게 사랑이었던 것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만나 여기까지 왔을까요. 당신의 사랑과 나의 사랑이 겹쳤던 봄날의 모퉁이. 돌연한 기적. 거리를 걷다 슬그머니 잡았던 손, 전봇대 아래 민들레가 환하게 흔들리던 시간, 파도가 무너뜨렸던 협재 해변의 모래성, 우리가 나눴던 이어폰, 거기에서 흘러나오던 누자베스의 음악들, 남반구의 어느 나라에서 어깨를 기대어 바라보았던 남십자성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먼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을까요. 사랑을 지나와 사랑에 당도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사랑 앞에서 우연이라는 건 없다고 믿게 됐어요. 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우주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까지 계산한다고 믿게 됐어요. 기적 같은 필연. 내가 당신 앞에 설 수 있었던 걸 한낱 우연으로 돌리긴 싫었던 거죠. 그러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당신을 사랑하는 거죠.

나는 지금 당신의 사랑을 지나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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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갑수,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p.18
 

 


 

 

 

어제. 해밀(비 온 뒤 맑게 갠 하늘) 아래,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을 품에 안은 퇴근길.

내일이면 드라마가 끝난다는게 안 믿기고,
애정하는 하백이랑 소아 보낼 생각에 먹먹하고,
이렇게 추억할 수 있는 책 한 권이 있어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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