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621 굳이 [부사] : 고집을 부려 구태여


요새 내 책은 통 안 읽고 자꾸 도서관 책만 읽는 것 같아서 반납 때마다 대출을 자제해왔다. (자제해서 5권인게 함정이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책을 반납하는데 문득, 뭐 하러 자제했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 책을 안 읽는 것도 아닌데. 반대로 도서관 책을 안 읽는다고 해서 내 책을 읽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순전히 내가 좋아서 하는 독서인데, 굳이 스트레스 받을 필요 있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2017 서울국제도서전’이 한 몫 했다. 관람 7년차인 올해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 했던 건 '서점의 시대'였다. 전국 곳곳에 있는 작은 책방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던 기분 좋은 시간. 그 중 나는 ‘미스터 버티고’라는 책방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지런히 진열된 책 한 권 한 권에는 띠지가 둘러 있었다. 신작이기도 하고 구매를 생각하고 있던 책이라 김영하 작가님의 신작 소설 <오직 두 사람>에 제일 먼저 눈이 갔는데, 이 책의 띠지 속 문구는 이러했다.


'도서전 와서 손님 없어 베스트셀러나 좀 팔아 보겠다는 얄팍한 속셈으로 아직 읽지도 않은 책을 띠지로 만들었지만 믿고 보십시오 김영하잖아요'

내가 이 부스에 머물러서 띠지를 하나하나 읽게 만들었던 문제의 띠지였다.


손보미 작가님의 신작 소설 <디어 랄프 로렌>에는 '랄프 로렌이라니 무슨 개풀 뜯는 소리야 하다가 끝까지 읽게 되는… 어쩐지 무척 쓸쓸하지만 참 따뜻한 소설'이라는 띠지가, 코맥 맥카시의 소설 <로드>에는 '가능하면 술 마시며 볼 것을 권합니다 그래야 저처럼 무사히 끝을 볼 수 있습니다'라는 띠지가, 도나 타트의 소설 <황금 방울새>에는 '쉽게 읽히지 않는 만큼 절대 잊히지 않는 작품. 어쩐지 아델 노래와 닮았다'라는 띠지가 둘러 있었다. 재치 있는 글에 미소 짓기도 하고, 아직 읽지 않았음에도 어쩐지 고개를 끄덕 거리게 하는 문장들이 띠지에 담겨있었다.


읽은 책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는데, 읽은 책에 대해 쓴 글을 보면 그 사람의 모습이 조금 더 선명해진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진솔한 띠지 앞에서 내 책과 도서관 책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이토록 많은 책 가운데 굳이 한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면, 이 책들 가운데 한 권을 골라 읽고 싶었다. 덕분에 나는 대책 없이 너그러워졌다. 굳이 내 책, 도서관 책을 구분하지 않고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다. 집에는 내 책을 두고, 도서관 책을 대출해오고 반납하고 다시 대출해오는 일을 반복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 받지 않기로 했다. 무작정 손 가는대로 책을 읽다가 좋은 책을 만나기도 하고, 고집을 부려 구태여 읽고 싶은 한 권의 책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그토록 애쓰지 않아도 말이다.




덧붙이는 글_

본래 3장 분량의 글이었다. 까딱하면 글을 날려 먹을까 싶어서 복사를 해둔다는 것이, 그만 복사하다가 날려먹은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썼다. 으하하 (눈물) 어떤 문단은 통으로 까먹고, 어떤 문단은 기적 같이 기억을 되살려서 다시 썼는데 글의 흐름과 맞지 않아 퇴고하면서 삭제했다. 담백하니 한 장으로 정리된 건 좋은데, 날아간 글에서 유독 반짝였던 한 줄이 손 끝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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