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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왔지만
다카기 나오코 지음, 고현진 옮김 / artePOP(아르테팝)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혼자살기 시리즈로 입문했던 다카기 나오코의 만화. 한 권 두 권 챙겨 읽다보니 벌써 8권을 읽었다. 그림의 ‘ㄱ’자도 어려워해서 그저 꿈만 꾸고 있는, 일상 만화에 대한 로망을 다카기 나오코의 만화를 보며 채우는 게 아닐까 싶다. 먹방 만화도 있고, 실용 만화(얼렁뚝딱 홈메이드)도 있지만 다카기 나오코 만화의 매력은 역시 일상 만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에 읽은 2권의 책 『우리집 무쿠, 못 보셨어요?』와 『효도할 수 있을까?』에 혼자살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다카기 나오코의 자취 이야기를 다시금 궁금해 하던 차에 이 책 『도쿄에 왔지만』을 접했다. 고향집에서 상경을 결정하고, 준비하고, 올라와서 살림을 꾸리고, 전철을 타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고향에서 올라온 가족을 맞이하는 진짜 상경 이야기다.
진짜 상경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깨알 같은 이야기들에 눈이 갔다.
도쿄로 갈 용기는 없었고, 시간만 허비하고 있던 때에 집 근처에 있는 이삿짐센터에서 하게 된 알바. 다른 이들의 새로운 출발을 보고 있으니, 자신도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상경을 결심한 이야기.
휴가를 맞아 딸의 도쿄 집을 방문한 아빠. 그런 아빠가 작고 썰렁한 방을 보면 깜짝 놀랄까, 급하게 방석도 사고 제대로 된 컵도 사고 장식용으로 화분도 마련해두는 딸. 아빠의 눈에는, 안테나 연결이 안 되어서 화면이 이상한 TV와 햇빛이 많이 드는 창이 눈에 든다. 그 자리에서 TV를 손 보고, 대나무발을 사와 창에 달아주고, 무거운 10kg짜리 쌀도 사다 두고, 돌아가는 길에 용돈을 쥐어주는 아빠.
‘어른이 되고 나서 부모님께 받는 용돈은, 고맙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한 복잡한 기분이 들게 했어요. 아빠가 떠나고 또 다시 혼자만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잠깐이지만 내가 도쿄의 작은 집에서 자취를 하는 딸이 된 것만 같았다. 먹먹했던 아빠의 상경도 잠시, 아빠가 떠나고 또 다시 혼자만의 생활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현실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챕터마다 끝에 ‘행복 in 도쿄’라고 해서, 도쿄에서의 자취 생활 속 행복을 한 컷으로 담아내는데 이걸 챙겨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고향에 비해 미혼 비율이 높다거나, 시설이 다양하고 풍부해서 어딜 가야 할지 고민된다거나, 텔레비전이나 잡지에 소개되는 가게가 직접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는 이야기의 만화를 보고 있으면 잘 모르는 도쿄가 어쩐지 가까운 기분이 들었다.
도쿄에 왔지만 일러스트 일은 쉽지 않고, 전철 노선은 너무 복잡해 미로 같고, 알바비는 집세, 식비, 연료비 같은 생활비로 순식간에 사라져서 화려한 도시의 불빛을 즐기기에는 돈이 턱없이 모자른 나날. 제대로 되는 일은 없고,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후회한 적도 있었던 도쿄에서의 생활. 전시회를 보기 위해 나란히 도쿄를 찾은 가족들. 그런 가족들을 보며 작가님은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제가 도쿄에 온 것으로 제 인생도, 저와 인연을 맺은 사람의 인생도, 이렇게 조금씩 함게 변해가는 거겠죠...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조금 더 이 도시에서 열심히 살아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쿄에 온 의미가 조금은 선명해진 순간. ‘도쿄에 왔지만’은 그렇게 ‘도쿄에 와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