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씨가 국민학교 때였는데 담임 선생님이 일기장에 적어 주신 한 줄짜리 메모를 물끄러미 보던 어머니가 문득 말했다.
"나도 선생님 되고 싶었는데."
엄마는 그냥 엄마만 되는 줄 알았던 김지영 씨는 왠지 말도 안되는 소리 같아 웃어 버렸다.
"진짜야. 국민학교 때는 오 남매 중에서 엄마가 제일 공부 잘했다. 큰외삼촌보다 더 잘했어."
"근데 왜 선생님 안 했어?"
"돈 벌어서 오빠들 학교 보내야 했으니까. 다 그랬어. 그때 여자들은 다 그러고 살았어."
"그럼 선생님 지금 하면 되잖아."
"지금은, 돈 벌어서 너희들 학교 보내야 하니까. 다 그래. 요즘 애 엄마들은 다 이러고 살아."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김지영 씨의 어머니가 된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치맛자락 끝을 꾹 밟고 선 작지만 묵직하고 굳건한 돌덩이. 김지영 씨는 그런 돌덩이가 된 기분이었고 왠지 슬펐다. 어머니는 김지영 씨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너저분하게 흐트러진 딸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다정하게 넘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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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중에서

 


 

어떤 구절은 진하게 효과를 넣은 것처럼 조금 달리 읽힌다.

이 구절이 그랬다. 책을 읽기 전에 한 피드를 통해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내 눈 앞에 활자로 마주하게 되니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일기장을 앞에 둔 지영 씨와 어머니 미숙 씨가 눈 앞에 어른거렸다. 지영 씨의 머리칼을 다정하게 넘겨주는 미숙 씨.

그 손길에 담긴 온기가 전해져서, 나는 다음 장을 쉬이 넘기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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