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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를 써놓고 보면 줄간격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글씨는 얼마나 크고, 또 필압은 얼마나 센지.
종이에 한 자 한 자 박이게 쓰고 나면, 종이가 모서리부터 말려서 떠오른다.
펜을 애매하게 올려둔 건, 어김없이 말린 종이 때문이다.
전엔 그저 필사가 좋아서 했지만, 요새 필사했던 순간을 되돌아보면 우울하거나 생각이 많을 때 쓰곤 했다.
하도 돌려봐서 다음 대사가 뭔지 꿰고있는 드라마를 들으며, 읽어도 읽어도 좋은 책을 필사하는 시간.
다음 날 피로를 사무치게 느끼면서, '미쳤지 미쳤어 제발 얌전히 좀 자자'고 다짐하지만 포기하기 쉽지 않은 시간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가 글이 너무 좋았던 나머지,
결국 구매해서 소장하고 있는 이화경 작가님의 <열애를 읽는다>.
그래서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롤리타》라는 소설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지만 그 말은 한 인간을 이해하는 말이 아니라 오해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사내를 이해하는 길은 오로지 그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방법밖에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생전에 소설가 나보코프는 '책은 읽을 수 없다. 다시 읽을 수 있을 뿐'이라고 단언했다.
특히 '문학은 물약 삼키듯 단숨에 돌이켜버리면 안 된다. 손으로 잘게 쪼개고 으깨고 빻아야 한다.
그래야만 손바닥의 오목하게 파인 가운데에서 풍겨 나오는 달콤한 향을 음미할 수 있다'고 그는 조언했다.
이 두 구절을 꼭 한 번 기록해두고 싶었는데, 이렇게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