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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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지 못하는 책이 있다.

500쪽이 넘는 쪽수를 자랑하는 두꺼운 책? 얼마든지 추천할 수 있다. 시작이 어려워서 그렇지, 책에 몰입하게 되는 그 선을 넘으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낼 수 있는 책이라고 추천하곤 한다. 7년의 밤과 미비포유가 그랬다. 감동도 감동이지만 그 흡입력을 잊지 못해서 추천했는데, 잘 읽었다는 답이 돌아와 기분이 좋았다.

지난 일이지만, 인생의 책 중 한 권으로 꼽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 역시 추천한 적이 있다.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도 이 책 앞에선 양반이다. 적어도 사람이 나오지 않나.

'모두가 시인인 공룡족의 도시 린트부름에서 태어난 젊은 공룡 미텐메츠는 대부로부터 신비한 원고 한 뭉치를 유산으로 받는다. 그는 원고의 강렬함과 풍부한 감성에 매혹되어 실종된 저자를 찾아 부흐하임으로 떠난다.'가 핵심 줄거리인 이 책을,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추천했나 싶다. 열렬한 추천 끝에 두 친구가 읽어주었다. 미안하고 고맙다.

추천하지 못하는 책은 다시 말해 비(非) 추천, 추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읽었으나, 결코 너도 읽어보라 하지 못하겠어서, 추천하지 않는 책이다. 지독하디 지독한 삶. 읽고 있으면 갑갑해서 숨이 턱 막히는 삶. 한 사람의 삶이 어쩜 이렇게 끔찍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삶. 그런 삶을 끝까지 써내려간 책. 그런데 나는 왜 이 작가의 책을 세 권이나 읽고 있는 것일까.

지난 해 영화 '마돈나'의 수상을 축하하며 쓴 글에서 이야기한 적 있지만, 오늘은 이 책 속 한 구절을 앞세워 이야기해본다. 


뜨거운 죽 한 그릇을 앞에 두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로지 뜨거운 이걸 잘 먹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크게 한 술 떴다가 입천장을 데었다. 아이를 먹일 때는 호, 호, 호, 세 번씩 불어 식혀 먹었다. 아이 한 번, 나 한 번, 아이 한 번, 나 한 번. 아이는 죽 그릇이 다 빌 때까지 입을 쩍쩍 벌려, 주는 족족 다 받아먹었다. 손톱보다 작은 이가 박힌 아이의 붉은 입안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릿했다. 분명 내 가슴을 열어 젖을 먹여 키운 아이였는데, 내 손으로 먹을 걸 떠먹여주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아, 잘 먹었다. 빈 그릇을 보여주자 아이가 맑게 웃었다. 자알 머거따! 저도 나를 따라 혀 짧은 소리를 냈다. 먹을 걸 주니 이제야 엄마로 인정하는 모양이었다. 나에게 웃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덥혀졌다. "걱정 마. 엄마가 평생 몸을 팔아서라도 네 다리 고쳐줄게." 배가 부른 아이는 하품을 하며 눈을 비볐다. 나는 당장 병원부터 다시 예약을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이설 <환영> 중에서

 


기구한 삶을 살아가는 그녀들의 삶에도, 평범한 일상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 분명 있을 것이다. 소설 속 윤영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제 좀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람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의 희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날아드는 최악의 상황들.
그 상황 속에서 윤영과 아이가 어느 죽집에 들어가 앉았다.


젖먹이인 아이를 집에 있는 아빠의 품에 안겨놓고 일하러 가야했던 여자. 그런 엄마가 낯설어 매번 아빠만 찾던 아이.

'애착'이란 단어와 멀찍이 떨어져 살아온 지난 시간들. 바라보는 내가 속상해 죽겠던 나날들을 보내고, 비로소 맞이한 엄마와 아이의 시간. 그 시간 속에서 마음이 덥혀진 윤영의 이어지는 말이 아릿해서 혼났다. 평생 몸을 팔아서라도, 라고 각오하는 엄마라니.

그래서 추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읽어내기 쉬운 책이 아닐뿐더러, 책이 동반하는 우울함을 온전히 안고 읽어내야하는 책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이런 순간 때문이다. 오히라 미쓰요의 에세이 제목처럼,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하고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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