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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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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와 함께 손꼽는 소설의 첫 문장이다. 소설이 아닌 그저 한 문장으로만 김훈 작가님을 기억하던 나는, 지난해 11월 김연수 작가님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출간과 김훈 작가님의 산문집 자전거 여행재출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김훈 작가님을 만났다. 질문에 대한 답을 고르는 그 모습과, 답을 할 때의 그 눈빛이 인상 깊었다. 글은 글을 쓰는 그 사람을 닮는다더니, 정말 그랬다. 내가 기억하는 문장이 바로 그 한 문장이었을지라도 말이다. 에세이는 쉽고, 소설은 어렵다고 하셨지만 그의 소설이 조금 어려웠던 나는 일단 에세이부터 읽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 책 라면을 끓이며가 내 품에 들어오고서야 나는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오래전에 절판된 산문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바다의 기별에 실린 글의 일부와 그후에 새로 쓴 글을 합쳐서 엮은 책이라고 하는데, 나는 작가님의 모든 산문집을 읽어본 적이 없으므로, 이 책은 그저 하나의 산문집이었다.

 

우리 남매들이 더 이상 울지 않는 세월에도, 새로 들어온 무덤에서는 사람들이 울었다. 이제는 울지 않는 자들과 새로 울기 시작한 자들 사이에서 봄마다 풀들은 푸르게 빛났다. (p.34)

 

이 산문집의 제목인 라면을 끓이며로 시작한 1부 곳곳에서 김훈 작가님만의 문장을 만나고, 마주하는 2의 시작은 세월호. 201511중앙일보에 실린 글과 같은 해 410일 종합경제지 이투데이에 실린 글을 합쳐서 재구성한 글이라 그런지 제법 길다.

나 역시 세월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지만, 그걸 글로 풀어내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날은 세월호라는 세 글자에 앞에서 나아갈 수 없었고, 또 어떤 날은 뉴스에서 되풀이해 보여주던 침몰하는 세월호의 한 호실에서 구조되는 다른 이들을 바라보는 아이들 생각이 나서 끝내 마무리 짓지 못했다. 그래서 세월호를 이야기한 작가들의 많은 글을 찾아 읽었다.

 

글을 쓰면서 읽은 책을 들이대는 것은 게으르고 졸렬한 수작일 테지만 나는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별수 없이 책을 들먹인다. (p.156)

 

며 조선 성종 때 관인 최부의 기록과 조선 영조 연간의 제주도 선비 장한철의 기록과 마지막으로 함석헌의 글을 인용하는데, 작가님이 아니면 결코 접하기 어려웠을 기록이다.

 

그리고 다시 4월이 와서, 세월호 침몰은 1주년이 되었다. 꽃보라가 흩날리고 목련이 피어서 등불로 돋아나고, 여자들도 피어서 웃음소리가 공원에 가득하다. 생명의 아름다움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사람이 입을 벌려 말할 필요는 없을 터이지만, 지난해 4월 꽃보라 날리고 천지간에 생명의 함성이 퍼질 적에 갑자기 바다에 빠진 큰 배와 거기서 죽은 생명들을 기어코 기억하고 또 말하는 것은 내가 아직도 살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겨우 쓴다. (p.170)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고 나서도 나는 단지, 겨우 쓴다.’는 문장이 내 안에 오래 남았다. 밥과 돈과 몸과 길과 글 사이에서 그는 여전히 라면을 끓이며, 살아 있는 육체성의 느낌을 전해주는 연필로 글을 쓰며 단지, 겨우 쓸 것이다. 그렇게 쓰인 그의 산문을 뒤로하고 나는 아직 읽지 못한, 그의 많은 글들을 읽으려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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