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이석원 지음 / 그책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친구에게 빌려준 책 중에 나는 정말 좋게 읽어서, 내 인생의 에세이 중 한 권이어서 선뜻 빌려줬었는데 공감하지 못했다, 는 말과 함께 돌아온 책이 있다. 바로, 산문집 보통의 존재. 나는 너무 잘 읽었어서 간과하고 있었던 거다. 비단 책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내가 공감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공감하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공감했다고 해서 내가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 중요한 사실을. 여하튼, 그렇게 책을 돌려받고 그런가?’하고 다시 읽었다. 내 책으로 소장하고 나서 여섯 번째 다시 읽는 것이었는데 나는 여전히 좋았다. 한 번 잘 읽었다고, 여러 번 좋기는 어려운데 여섯 번째 읽어도 좋다니. 이럴 수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접하기 전에, 작가님의 장편소설 실내 인간도 사서 읽었지만 분야가 소설이어서 그랬는지, 보통의 존재가 너무 좋았던 탓인지 감흥이 조금은 덜했던 것 같다. (물론 읽고 나서 지인들에게 많이 추천했을 정도로 좋게 읽었지만) 그런 작가님의 두 번째 산문집이니, 두말할 것 있나. 읽어야지. 보통의 존재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책의 제목도, 표지도 여전히 내 취향을 저격했다.

 

변함없이, 당황스러울 정도의 솔직함. 나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솔직하지 못한데, 변함없이 솔직한 글이 부러웠다. 어떤 삶이든, 그런 삶을 내 보일 수 있다는 것이.

 

2009년에 첫 책을 내고, 나는 내가 사십년 만에 처음으로 내 일을 찾은 줄 알았다. 하고 싶은 일, 해야 될 일, 잘할 수 있는 일. 그런데 아니었다. 두 번째 책인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행복하지 않았고 나라는 사람은 원래 일에서 재미나 행복, 성취감 같은 것을 찾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걸 원하고 있는 내가 스스로 당황스러웠다. 지금껏, 거의 평생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건 소수의 혜택 받은 사람들에게나 주어지는 행운 같은 것이라 생각했기에, 어떤 일이건 밥벌이나 기타 등등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거기에 대해 특별히 결핍을 느끼지도 않았다. 어떻든 잘해내기만 하면 그뿐이었으니까. 그랬던 내가, 이제 더는 일이 즐겁지 않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을 때, 나를 지탱하던 많은 것들이 헝클어지고 말았으니. (p.191)

 

이 책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여전히 솔직한 보통의 존재, 이석원과 철수와 산나와 김정희가 나오는 산문집이다.

 

지독히 불행했던 남자 철수. 그런 그가 불운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고, 기적적으로 우승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그는 태어나서 가장 운이 좋았던 기억으로 이렇게 쓴다. 불운 올림픽에 와서 구남이란 사람을 만난 것이 내 평생의 행운입니다, 라고.

 

산나는 이석원에게, 사람이 사람을 그런 이유로 좋아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려준 사람이었다. 왜 나 같은 걸 니가 좋아해? 싶었던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애의 세 살 난 아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다. 단지 자신의 옆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정말이지, 누군가는 누군가를 그렇게 좋아할 수 있다.

 

그리고 포르쉐를 몰던 여의사 김정희. 그녀와의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나는 그녀를 만나면서 그가 했던 고민이 인상 깊었다.

 

내 고민의 포인트는 그녀를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멀쩡한 사람이 왜 사람을 이런 식으 로 만날까. 나는 또 왜 병신처럼 그걸 받아주고 있을까. 분명 뭔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데 그 이유라도 알면 좀 나을 것 같은데, 그런데도 난 솔직히 털어놓고 대화를 청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애초 그 사람이 원천 봉쇄를 해둔 탓이긴 하지만 사실 이게 과연 이해의 문제인지 그게 해결되고 나면 정말 내 마음이 괜찮아질지조차 알 수 없었다. (p.219)

 

그 즈음 그는 우연히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말년을 그린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을 보았고, 톨스토이와 그의 아내 소피아를 보며 그는 이렇게 썼다.

 

사랑은 이처럼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끊임없이 확인하게 되는 것. 나를 사랑하냐고 묻는 것이 또한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중략)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런 소피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이란 그럴 수 있는 거니까. 온 세상 사람들이 나를 알아준다 한들 당신이 몰라주면 소용없는 거니까. 그건 온 세상이 몰라주는 것과 다름 없으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이해해줄 때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러나 그건 어렵고도 힘든 일.

(중략)

사랑이란 결국 상대와는 상관없는 나 자신의 문제이기에, 이렇게 엇갈릴 수밖에 없으며 사랑의 그런 영원히 완결될 수 없는 불완전성이야마로 사랑을 영원하게 해주는 요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p.221)

 

위 구절이 담긴 사랑과 이해라는 글에서, 그는 영화 렛미인에 대한 생각도 덧붙인다.

 

가끔은 사랑보다 이해가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가끔이 아니라 자주. (p.225)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은 계속해서 김정희다. 김정희를 만나고, 기다리고, 생각하다 크리스마스가 온다. 두 사람의 관계에 변화가 있기 무섭게,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마주하고 만다. 그 순간 남자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여자가 좀 더 남자를 포용할 수 있을 때 만났으면 두 사람은 헤어지지 않았을까?

 

원래 여자친구의 휴대폰을 절대로 보지 않던 남자는, 이번만큼은 보게 되는데 그녀의 휴대폰에서 자신은 몰랐던 그녀를 발견한다. 동료 의사에게 보낸 그녀의 문자들. 일기 같기도 하고 혼잣말 같기도 한 그것들은 실은 모두 그에게 보내는 말들이었다. 그 말들을 보면서 그는 자책감이 든 동시에 그녀가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자신이 스스로 정리해 자신의 입으로 뱉어낸 그 말 그대로 종료가 되어 어떤 것으로도 되돌릴 수 없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드라마 끝나듯 그럴 수 있나. 그녀에게 너무나 연락하고 싶지만, 그는 나리의 조언대로 연락하지 않기로 한다.

 

석원아. 너 그거 알지. 병법에 생즉사, 사즉생이라고 있는 거. 죽으려면 살고 살려면 죽는다. 연애도 전쟁이야. 작전도 있어야 하구 타이밍은 또 얼마나 중요하니? 넌 지금 무조건 그 여자를 잊고 지내야 해. 그래야 단 일 프로라도 남아 있는 가능성을 잡을 수 있어. 만약 니가 지금 한 발짝이라도 다가가면 그 여자는 우주 밖으로 달아나. 명심해. 널 안 좋아해서가 아냐. 사람 마음이 그래.” (p.304)

  

이 책의 제목,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그녀 김정희에게서 오던 문자 중 하나였다.

 

뭐해요?

 

꽃피는 5월의 계동.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고, 그는 늘 그렇듯 오후의 홍차로 향하던 어느 날이었다. 오후의 홍차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려던 그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갑작스런 벨소리에 놀라 들어가려다 말고 도로 가게 밖으로 나와서는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는데, 세상에......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여자고 직업은 의사이며 성이 김씨였다면 믿겠는가?’ 하며 그는 두 번째 산문집을 갈무리한다. 그의 변함없이, 당황스러울 정도의 솔직함이 전작 보통의 존재에서는 그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들었다면 이번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에서는 그의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게 만들어서,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내 연애처럼 고민하고, 공감하며 읽게 만들다니. , 이러니 내가 그의 산문집을 사랑해 마지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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