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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16기에도 신간평가단 활동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남은 4분기에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아닌, 내가 읽기로 했고 읽어야 할 책에 무게를 두고 읽기로 했으니-

다잡은 마음을 16기 첫 신간페이퍼에 쏟아본다.

 

 

 

1. 김훈 <라면을 끓이며>

 

소설가 김훈 산문집. 오래전에 절판되어 애서가들로 하여금 헌책방을 찾아다니게 한 김훈의 전설적인 산문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바다의 기별>에서 시대를 초월해 기억될 만한 산문들을 가려 뽑고, 이후 새로 쓴 산문 원고 400매가량을 합쳐 엮었다.

가족 이야기부터 기자 시절 거리에서 써내려간 글들, 최근에 도시를 견디지 못하고 동해와 서해의 섬에 각각 들어가 새로운 언어를 기다리며 써내려간 글에 이르기까지, 김훈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전히 원고지에 육필로 글을 쓰고, 자가용에 몸을 싣는 대신 자전거를 타고 두 발로 바퀴를 굴려 세상을 나아가는 그가 기록한 세상과 내면의 지난한 풍경들. '밥벌이의 지겨움',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 길이 회자되는 김훈의 명문장들을 읽는 기쁨과 함께,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시대에 진영 논리에 휩싸여 악다구니를 벌이는 권력가들에게 그가 '슬프고 기막혀서' 써내려간 글, 여전히 '먹고살기의 지옥을 헤매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김훈 산문의 정수'가 이 책에 있다.

 

 


 

 

작년 11월에 김훈-김연수 작가님 북토크를 다녀오고, <자전거 여행>을 꼭 한 번 읽어봐야지 했는데 아직까지 읽지 못하고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접했다. 북토크에서 내가 김훈 작가님의 산문집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그분이 말하시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 컸던 것 같다. 글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김훈 작가님의 글은 김훈 작가님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정갈하고 담백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소설이야 그렇다치지만 산문집이라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읽어보고 싶었다. 지난 10개월간 게으른 탓에 결국 책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 작가님의 산문집을 처음 만난다니 어딘지 모르게 설렌다. 예약판매때 구매를 하면 라면 한 봉지와 냄비를 주는 행사를 했었는데, 10월에 도서전에 방문해서 구매하려고 아껴뒀다. 그런 책이기에, 신간페이퍼에서 언급을 안할 수 없어서 넣었다. 넣고보니 1순위라는 게 함정.ㅎㅎ

 

 

 

2. 이석원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보통의 존재>로 큰 사랑을 받았던 이석원의 두 번째 산문집. 현실적인 소재로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그답게 이번 산문집 또한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싶은 이석원의 언어로 가득하다. 그의 대표작이자 첫 번째 산문집인 <보통의 존재>는 출간하자마자 연애와 결혼, 일과 미래 등 모든 것이 불투명한 젊은이들의 불안감을 따뜻하게 보듬으며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작가 이전에 한 사람의 창작자로서 그는 무엇을 만들든 전작과는 다르게 만드는 것을 창작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 왔다고 한다. 그렇기에 <보통의 존재>와는 사뭇 다른, 그러나 이석원만의 개성은 살아 있는 전혀 새로운 산문집이 나올 수 있었다.

<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형식과 내용 두 가지 면에서 모두 독특한 책이다. 여느 에세이처럼 짧은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책 한 권을 관통하는 하나의 긴 이야기를 품되 작가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집중하여 글을 전개함으로써 '산문집'의 형태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석원의 글이 가진 특유의 흡인력과 속도감은 유지하면서 에세이 본연의 역할 또한 놓치지 않았다. 순간순간 작가의 생각을 드러내는 길고 짧은 글들은 단순히 페이지를 넘기도록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각하고 쉬어갈 거리'를 준다. 사람과 삶, 사랑이라는 주제에 한결같이 매달려온 작가는 이번에도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표현의 도구로 특별히 '말'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 안에는 유난히 많은 '말'들이 담겨 있다.

 

 


 

올해 친구에게 빌려준 책 중에 나는 정말 좋게 읽어서, 내 인생의 에세이 중 한 권이어서 빌려줬었는데 공감하지 못했다,는 말과 함께 돌아온 책이 있다. 바로 <보통의 존재>다. 나는 너무 잘 읽었어서 간과하고 있었던 거다. 비단 책의 문제만이 아니지만, 내가 공감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공감하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공감했다고 해서 내가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여하튼, 그렇게 책을 돌려받고 '그런가?'하고 다시 읽었다. 내 책으로 소장하고 나서 여섯번째 다시 읽는 것이었는데 그래도 좋았다. 아, 한 번 좋은 책이었다고 이렇게 여러 번 좋기도 어려운데 여섯번째도 좋다니. 그 사이에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었던 <실내 인간>도 사서 읽었지만 분야가 소설이어서였는지, <보통의 존재>가 너무 좋았던 탓인지 감흥이 조금은 덜했던 것 같다. (물론 읽고 나서 지인들에게 많이 추천했을 정도로 좋게 읽었지만) 그런 작가님의 두번째 산문집이니, 두말할 것 있나. 당연히 읽어야지. 보통의 존재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책의 제목도 표지도 취향 저격 제대로다.

 

 

3. 고코로야 진노스케 <너무 노력하지 말아요>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다 이루어진다? 그 '언젠가는'이 행복을 향해 가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걸 실은 다들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모두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오늘 하루의 '확실한 행복'을 양보하며 끝없이 노력하는 삶을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별반 노력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행복해 보인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20년 가까이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성격 리폼 전문 심리 카운슬러'로 전직한 저자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장에서 직접 겪으며 깨우친 진리를 <너무 노력하지 말아요>에서 쉽고 친근하게 전한다. 열심히 하는데 결과가 없고 인정받지도 못한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스스로 나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노력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그 정도뿐인 존재'라는 강박관념은 결국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진정한 자신감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그래도 나는 고유하고 대단해'라고 생각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노력과 그 결과 이전에, 고유한 가치를 지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저자는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너무 노력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하든 안 하든 일어날 문제는 일어난다는 진실, 지금 있는 곳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언제, 그 어디를 가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성공과 돈은 경험해본 사람에게 더 쉽게 찾아온다는 것을 일깨운다.

 

 


 

학창시절 내 좌우명에 항상 들어가는 단어가 있었다. '노력'이라는 단어. 그땐 노력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노력'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뀐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나는 한국지리와 세계지리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고민끝에 나는 세계지리를 택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있어서 참 좋아했던 과목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성적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그런 나를 안타깝게 생각하셨는지, 하루는 세계지리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수업 시간에 가장 열심히 하는 것도 나고, 이 과목에 있어 가장 흥미를 보이는 것도 나인데 노력하는 것에 비해 턱없이 낮은 나의 시험 점수에 대해 진지하게, 함께 고민해주셨다. 노력만해서 되는 건 아니라고. 아무래도 공부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내 공부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나를 아껴주셨기에 그런 이야기를 해주신 것에 감사했고, 한편으론 당황했고 복잡한 감정 때문이었는지 울면서 교실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나 역시 열심히 하는데 결과가 없었던 건, 한 번도 나를 돌아보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는,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나는 노력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그 정도뿐인 존재'라는 강박관념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노력이었고, 그 정도뿐인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있어서 힘들었다. 이 책을 읽은건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이 책의 제목에 위로를 받아본다. 우리, 너무 노력하지 말아요.

 

 

 

4. 정은우 <아무래도 좋을 그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파워블로그' 제도를 만든 2008년부터 2014년까지 3491명의 파워블로거가 탄생했다. 그중 7년 연속 파워블로거로 남아 있는 사람은 단 14명. 그만큼 꾸준히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7년 연속 에세이와 예술 분야 파워블로거로 활약 중인 '솔샤르' 정은우 작가는 '특별한 걸 만들어내는 재주'보다는 '꾸준히 하는 능력'을 재능이라 여기며, 지난 7년 동안 약 370만 명의 네티즌과 소통해왔다. 그중 특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두터운 팬층까지 거느린 주제가 바로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만년필 스케치였다.

뉴욕 5번가의 거리 모습, 터키 아야소피아 성당의 내부, 대만 스린 야시장의 한 장면, 노르웨이 주택가에서 마주친 길고양이, 샌프란시스코의 노면전차, 서울의 종묘와 창경궁, 교토 은각사와 기요미즈테라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마음에 새긴 한 장면을 날카롭고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 만년필 스케치는 흔히 보던 사진 속 여행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특유의 아날로그적 감수성과 날선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도 매력적이다. 흔한 블로그 여행기가 어디서 뭘 보고 뭘 먹고 어떻게 이동하고 어디서 잤는지 등의 일상 글이라면, 정은우 작가의 글은 신변잡기적 수다를 일체 배제한 채 여행지의 건물 또는 사물의 역사가 가진 모순이라거나, 거기에서 읽어내야 할 의미 등을 뚜렷한 기승전결을 갖춘 한 편의 에세이로 완성시키고 있다.

 

 


 

한 번도 파워블로거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꾸준히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건 뼈저리게 안다. 왜냐하면 한 가지씩 떼놓고 봐도 충분히 어려운 일이기 떄문이다. 시덥잖은 이야기여도 '꾸준히'하는 일은 쉽지 않고,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어려운 일이다.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낸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나 역시 한 사람의 블로거로서 존경심이 생기고,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네이버 블로그 메인에서 걸어주는 7년 연속 파워블로거에 대한 인터뷰 기사와 함께 콘텐츠를 소개해준 적이 있어서  블로그를 방문해 보았는데, 7년 간의 내공이 어마어마하게 쌓인 블로그였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만년필로 그렇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참 부러웠다. 단순히 그림이었다면 멋있다는 감정에서 끝났을텐데, 그림 솜씨만큼이나 글도 참 잘 쓰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두배로 부러웠다. 그림도 잘 그리면서 글도 잘 쓰면 어쩌자는 거야. 어쩌긴 뭘 어쩌나. 그런 기록이 담긴 이 책을 읽고 계속해서 부러워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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