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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방명록 - 니체, 헤세, 바그너, 그리고...
노시내 지음 / 마티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누군가 내게 어떤 나라를 여행하고 싶냐고
물으면,
나는
스위스라고 답하곤 했다.
내
대답을 들은 상대방은 왜 스위스를 가고 싶냐고 다시 물었다.
나는
‘스위스’라고
대답할 때보다 더 확신에 찬 말투로 이렇게 대답했다.
명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고 싶어서 라고.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명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처음 접한 뒤로 지금까지 나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만큼
빠져든 작품이 없다.
어두운
배경에서 한 줄기 빛을 받고 있는 소녀.
고개를
살짝 돌려 어깨 너머로 화면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그 시선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
작품을 두고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로 부른다지만,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왜 그리도 모나리자를 좋아하는지 알았다.
이렇게도
마음에 드는 작품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마우리츠하이스 왕립미술관에 가고 싶었고,
그
미술관은 스위스에 있었기 때문에 단순하게 스위스가 가고 싶었던 것이다.
(베르메르의
국적은 네덜란드이고,
네덜란드의
황금시대인 17세기를
대표하는 세 명의 대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화가이지만 오로지 그 작품이 스위스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네덜란드가 아니고 스위스였던
것이다.
하하.)
그랬던
스위스는,
조조
모예스의 장편소설 『미
비 포유』를
읽으면서 새롭게 다가왔다.
바로,
소설의
화두였던 ‘조력자살’
때문이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 윌 트레이너가 선택한 그 길.
나
역시 그를 간병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 루이자에게 감정이입해서,
그가
선택을 되돌렸으면 하고 바랐지만,
결국
그는 스위스로 떠난다.
소설을 읽던 당시에는 스위스를 그저
‘조력자살이
허용되는 나라’로만
생각했고,
소설의
전개에 빠져서 잘 몰랐다.
이
책 『스위스
방명록』
속
‘존엄한
탈출 :
조력자살’
부분을
읽으면서 조력자살에 관해 전반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사실은,
스위스의
리버럴한 조력자살 정책은 정부나 의료계가 주도권을 쥐고 정식으로 합법화하고 양성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자세한 법률이 부재하는 모호한
틈새에서 비영리단체들이 고통 없이 죽을 권리를 원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내고 지역정부와 의료계의 협조를 받아 약
30년에
걸쳐 일종의 관행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p.351)
이를 비롯해서 스위스에서의
조력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온전하게 읽게 됨으로써 나 역시 이 문제에 깊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구절이다.
자기를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그래야만 하는가.
이
세상으로부터의 ‘탈출’이
그리도 절박한가.
그러나
오로지 주변사람을 위해 고통을 감수하고 살아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애도가 두려운 자의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p.349)
조력자살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미국에서
8년,
일본에서
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4년,
그리고
지금은 스위스 베른에 옮겨가 2년째
머물고 있는 저자의 독특한 이력이 눈에 들었다.
그런
그녀를 두고 ‘영원한
여행자이면서 성실한 시민’이라
수식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소속된
내부자이면서 바깥에 선 관찰자로,
누구도
몰랐던 스위스 사회의 감추어진 이면을 들여다보는 책.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외국인이
정착하기 좋은 나라,
삶의
수준이 높은 나라라는 객관적인 스위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스위스에
누가 살았으며 그들이 무엇을 일궜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어서 좋았다.
니체의 안식처였던 실스마리아 챕터를
시작으로,
반평생을
스위스에서 보낸 헤르만 헤세의 이야기를 반갑게 읽고 취리히에서 요절한 천재,
혁명가이자
의사였고 문인이었던 게오르크 뷔히너 이야기를 지나,
존엄한
자살 ‘조력자살’을
거쳐 바그너의 스위스를 끝으로 이 책을 덮으면서 공감했다.
이
책을 재밌게 읽었다는 사람들의 별 5개
만점 후기를.
잘
몰랐고,
몰라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스위스는 내게 그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기 위해 가고 싶은 나라였지만 이 책을 통해 제대로 탈바꿈했다.
누구보다
뜨겁게 시대를 살았고,
누구보다
뜨겁게 싸웠고 사랑했던 사람들의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스위스로 말이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비스위스인들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언급하며 이런 구절을 덧붙인다.
‘이들은
모두 스위스에 머물렀던 경험을 통해 세상에 중요한 유산을 남겼으며,
그들은
스위스에,
스위스는
그들에 빚지고 있다.’
(p.16)
고.
에필로그를
읽고,
다시
앞장을 펼쳐 프롤로그를 다시 읽으면서 나는 깨달았다.
그들은
스위스에,
스위스는
그들에 빚지고 있는 가운데 나는 이 책을 쓴 노시내 작가님과,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 마티 그리고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기회를 준 인터파크 신간리뷰단에 빚졌다고.
다소
과한 표현일지라도,
이렇게
표현할 정도로 좋은 책이었다.
우리가 못 보고
지나치는,
혹은
스위스가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보물을 한 가득 담은 책을 감사하게 챙겨 읽은 기분.
덕분에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낯설었지만 새로웠고,
행복했다.
이
책의 에필로그 속 구절처럼 그 보물들 뒤에는 늘 ‘인간’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