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쓰는가,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아니다. 옳기는 하겠지만 좋지는 않다. 짧은 질문은 긴 대답을 요구한다. 차라리 쓰고 있는 사람을 지켜본 이가 답하는 게 좋다. '쟤는 아마 그것 때문에 맨날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을 거야', 이런 답이 나올 테니까. 왜 안 좋은가?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니까. 왜 사는가를 물어오면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하니까. 그렇게 하면 대부분 부끄럽고 쪽팔리니까.
(중략)
정확히 말해보면 쓰는 행위가 먼저 있다. 왜 쓰는가에 대한 답은 뒤에 생긴다. 늙은 농사꾼이 작물을 심고 가꾸어온 자신의 과거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는 것과 같다. 시작부터 이유와 의미를 정해놓는다면 '네 지금은 창대하나 나중에는 심히 미약해지리라' 소리 듣기 십상이다. 내가 어디로, 어떻게 갈지 아무도 모르니까. 살아본 다음에야 팔자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전까지는 잘 모른다. 우리 동네엔 해녀들이 대여섯 명 남았다. 평생 물질을 해온 그들이 오늘도 물옷을 입고 바다로 나가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어제도 나갔기 때문에. -한창훈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p.6


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 아, 작가의 말부터 이렇게 재밌어도 되나😁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아니라는 말에 혼자 빵터짐ㅎㅎ 이런 사이다같은 구절이라니🙊💕


언뜻 언뜻 읽었는데, 321쪽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기다리면 올 것은 온다. 견디느냐와 못 견디느냐의 차이뿐이다.'


아,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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