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아나 텔러라는 판타지 소설과 싫어!라는 인성동화를 읽고 난 뒤

다시 시집을 집어드니 기분이 묘하다. 시집 제목처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같았다.

3부까지 잘 읽다가 4부는 마지막 시 부터 거꾸로 읽어 완독했고,

내게는 크게 세 편이 남았다. 대장간에서의 대화, 등장인물들, 잉여의 시간.

이렇게 세 편. 그 중 고민 끝에 고른 대장간에서의 대화를 남겨본다.

 

*


대장간에서의 대화


 1
망치와 모루가 만나는 것은 등을 돌릴 때뿐이군요.
그것도 궁합이라면 궁합이지요.


 2
화덕에서 달군 쇠를 메질하고
담금질하고 메질하고 담금질하고 메질하고
그렇게 다듬어질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3
수많은 철의 자식들이 이곳에서 태어납니다.
이 뜨거운 아궁이 속에서.
망치와 모루 사이에서.


 4
모루의 둥근 뿔은 어디에 쓰지요?
그건 주로 굽은 쇠를 두드릴 때 사용합니다.


 5
칼과 낫은 여섯 번,
쇠스랑은 아홉 번 담금질을 합니다.
날을 가진 것들은 대체로
불과 물, 천국과 지옥 사이를 오가며 만들어지지요.


 6
강철 속에 불의 심장을 가두기 위해서는
물이, 차가운 물이 필요해요.


 7
땀을 많이 흘리시는군요.
신도 대장간에서는 땀을 흘립니다.

 

 

*

2번의 여운 덕분에 이 시를 골랐다. 2번과 같은 맥락으로,

동진님의 글 중에 좋아라하는 글이 있어 덧붙여본다.

어떤 일을 해내는데 세월이 필요하다면,

그건 그 시간이 곧 그 일의 핵심이기 때문이지요. (밤은 책이다 p.24)

글로 읽을 땐 이런 느낌이고, 내가 현장에서 들었을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은 원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 그렇다'였는데, 그 어떤 표현이건 좋다. 위 시의 2번처럼, 그렇게 다듬어질 수밖에 없는 것들이 분명 있으니까. 

 

 

 

나희덕.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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