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서는 그란데를 사라 - 기업이 절대 알려주지 않는 가격의 비밀
요시모토 요시오 지음, 홍성민 옮김 / 동아일보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요즘 내 인스타그램이 북스타그램이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경제학 분야를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이 경제학이지 장하준이나 장하준이(경제학이라면 그저 장하준밖에 모르는 바보)아니어서 경제학을 읽고 있다고 말하기 부끄러웠던건 당연히 아니다. 워낙 무지한 부분인지라 읽으면서도 내가 잘 읽는게 맞나 싶은 마당에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도 뭔가를 알고 이야기한다기 보다는 모르지만 이야기하고 싶어서 하는 쪽에 가깝다. 


이 책을 읽게된 건 우연이었다. 책 반납일이 되어서 도서관에 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 내가 자주 찾는 사회과학실이 장서 점검으로 휴실이었던지라 자연스레 자연과학실에 반납하러 가게 된 것이다. 올해는 그만 빌려야지 하고 반납하러 갔어도 손은 어느새 서가를 훑어보고 있었다. 각종 정리에 관련된 책들 앞에서 서성이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스타벅스에서는 그란데를 사라니? 


결국 빌려와서 읽은 끝에 저 질문은 거래비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커피 사이즈를 두 배로 해도 점원이 주문을 받고 계산을 끝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달라지지 않는다. 커피를 만드는 데 드는 시간도 수 초(혹은 10여 초)걸릴 뿐이다. 사이즈를 두 배로 함으로써 추가된 용량에만 주목하면 그것이 어떤 음료건 추가비용은 음료 원가밖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가격이 비싼 음료일수록 이익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라는 건 가게의 입장이고

톨과 그란데가 이를테면 천원 차이라고 할 때, 그란데를 선택하는 손님에게도 결코 손해가 아니라고 이 책은 설명한다. 한번에 많은 커피를 마시고 싶은 손님에게는 상당히 득이 되는 가격설정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의 전제가 되는 것이 거래비용인 것이고.

개인적으로 제일 공감이 갔던 부분은 '크게 히트한 영화의 DVD 가격이 갈수록 떨어지는 이유는?'이었다. 판매 측이 처음부터 지나치게 가격을 낮게 설정한 결과, 매출이 예상 외로 증가하면 더 높은 가격에 팔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가격을 높게 설정해 비싸도 사는 고객에게는 비싸게 팔고, 이후에 소비자의 반응을 보면서 가격을 인하하는 것이 판매 측으로서는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전략이다.
비싸도 사는 사람에게 가능한 한 비싸게 판다는 설명에서 완전 공감. 드라마나 영화가 DVD로 나올 때, 비싸도 이 작품이면 기꺼이 비싸게 사겠다는 팬의 마음을 잘 안다. 그래도 가격 앞에서 망설이는 팬들을 위해 제작사에서는 독자적인 부가기능이 다양하게 더해진 모델을 준비해 판매하는 것이다. 대본을 준다거나 감독판 영상 몇분짜리를 넣어준다거나. 나는 KBS에서 닥터후를 챙겨볼 때 매년 한국어더빙 오디오가 포함된 DVD가 갖고 싶었는데, 이건 정말 DVD가 아니면 구할 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또, 휴대전화 요금제는 왜 그렇게 복잡한지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간단하다. 소비자의 성향에 따라 가격차별을 함으로써 가능한 한 많은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란다. 쉽게 말해 가격에 둔감한 소비자가 처음 가입 시 요금제를 잘못 선택하거나, 자신에게 효과가 없는 할인서비스를 더해 수수료를 내거나, 반대로 자신에게 유리한 할인서비스를 더하지 않아 필요 이상의 비싼 요금을 내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아... 그런 거였군 싶었다. 호갱과 고객의 그 어디쯤에서 수입을 올리는 거다. 나는 호갱 쪽에 가까운 것 같아 씁쓸하지만. 


이 책에서 신선했던 사실이야 많지만, 그 중 제일은 일본이 석유제품 수출국인 이유였다. 원유를 여러 가지 성분으로 나누는 정제 작업은 큰 가치가 있는데, 거대한 설비가 필요하므로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든단다. 재밌는 건 일본에서는 석유정제 시설이 지나치게 많아 능력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이며 그 기술은 세계적 수준이어서 고품질의 석유제품을 저비용으로 정제할 수 있다고. 이게 왜 중요한지는 그냥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뒷문장에서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세계 유수의 산유국인 이란은 국내에서 소비하는 휘발유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석유정제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베트남 역시 산유국이지만 국내에 석유정제 시설이 없어서 휘발유 등은 전부 수입하고 있다고. 이런 기술이야말로 정말 남는 기술이구나 싶었다. 글로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지라도 그림이 들어간 각종 표가 이해를 도와서 큰 어려움없이 읽을 수 있다. 전반적으로 일본 경제를 바탕으로 이야기하지만, 정서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아 읽는데 부담이 없어서 잘 읽힌다. 

고딩때, 문과에서 반을 나누는 기준에 사회탐구도 한몫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세계지리를 선택해서 한국지리를 잘 모르고, 사회문화를 선택해서 법과사회를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는 고딩때나 먹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는 궁금하면 찾아 읽으면 된다. 관심있어한 분야나 추천을 받거나 무턱대고 장하준을 읽어보는 거다. 내게 경제학은 고전과도 같은 분야였는데(선뜻 손이 가지 않는) 읽어보니 재밌다. 사람은 만나봐야 알듯이 책도 읽어봐야 아는구나. 말 나온 김에 내년 독서계획에 경제학을 5권 챙겨읽기를 적어넣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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