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연필을 좋아하게 된 건, 3년전에 함께 일했던 두 사람 덕분이다. 다이어리에 늘 연필로 메모했던 언니와 연필로 그림을 그리던 언니. 두 사람의 손에는 늘 연필이 들려 있었다. 그 연필이 어떤 연필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게 어떤 연필이든 늘 연필이었으므로 내 눈길을 끌었다. 언니들은 연필을 곁에 두어서 든든해보였고, 쓰이는 연필은 굉장히 쓸모있게 보였다. 그런 언니들 곁에서 일하면서 나도 연필을 쓰기 시작했다. 먼저 집에 있던 연필을 가져와 썼고, 문구점에 가면 어김없이 연필 코너를 찾았다. 찐한 2B와 진한 B와 연한 HB 세 가지 연필밖에 모르는 나였지만, 그때부터 연필을 곁에 두었다. 3년이 지난 지금, 연필을 좋아하게 만든 두 사람은 내 곁에 없고 각자의 삶을 살고 있겠지만 여전히 연필을 쓰며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애석하게도 나는 연필만 좋아하는 건 아니어서, 연필과 만년필과 컴퓨터 자판 앞에서 무엇으로 글을 쓸 것인지 계속해서 고민하며 살겠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연필로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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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연필이 겸손해서 좋습니다. 연필은 강력하게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필기구가 아닙니다. 잘못 쓰면 언제든지 지울 수 있죠. 언제든 부재할 수 있기에 쓰는 부담이 적습니다. 그뿐인가요. 종이와 연필심이 만들어내는 '사각사각' 소리는 영혼의 귀를 든든하게 채워줍니다. 많은 이들이 이 소리에 끌려 연필애호가가 되곤 하지요. 연필의 생에는 철학적입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니까요. 아무리 정든 연필이라도 열심히 쓰다 보면 언젠가는 헤어져야 합니다. 열렬히 사랑할수록 더 빨리 헤어지게 되는 열정어린 사랑과 닮았다고 할까요. - 정희재, 다시 소중한 것들이 말을 건다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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