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비가 그쳤다가 다시 내리기에 빗소리를 들으며 영화 <제인 에어>를 보았다.

마이클 패스벤더의 로체스터를 보겠다고 동명의 원작 소설 <제인 에어>를 건너뛰고 영화 감상.
패시는 여전히 멋있고, 미아도 예뻤고, 영상미도 좋았는데-
원작을 안 읽은 나로서도 느껴지던 영화의 한계는 역시, 인물의 감정선이었다.
영화 <은교>를 먼저 보게 되고, 후에 집에 봉인해뒀던 원작 소설 <은교>를 읽은 후에야
<은교>를 제대로 봤다고 말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원작 소설 <헝거 게임>을 먼저 읽고 영화 <헝거 게임>을 보게 되었을 때는,
영화에서는 생략된 감정선에 대한 아쉬움을
캣니스의 독백을 떠올리는 것으로 대신하며 영화를 봤던 것처럼.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아쉬웠던 두 사람의 감정선이 궁금해서
이제야 읽고 싶어진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다른 사람들은 2011년작 <제인 에어>를 어떻게 봤나 리뷰를 살펴보니,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11년 <제인 에어>는 아쉽고
2006년작 BBC 제인 에어가 좋다는 평이 많더라.
두 사람의 감정선이 아쉬워서 찾아보려는 거지만
그렇게 <제인 에어>를 원작으로 제대로 읽고, 후에 BBC 제인 에어를 보게 되더라도
미아와 패시의 <제인 에어>는 잊지 못할 것 같다.
누가 뭐래도 나의 첫 '제인 에'어니까.
소설 <은교>를 박해일의 이적요와 김고은의 한은교와 김무열의 서지우로 읽었던 것처럼,
소설 <제인 에어> 역시 미아 와시코브스카의 제인과
마이클 패스벤더의 로체스터로 읽게 될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