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샤를드골공항에서 엄마 아빠와 헤어지기 전, 최대한 있는 힘껏 둘을 끌어안았다.
엄마는 곧 울 것 같은 표정이었고, 아빠는 흔들리는 감정을 감추기 위해 먼 곳만 바라보셨다.
나의 근본, 나의 시작, 나의 힘, 나의 아킬레스건, 부디 안녕히.
뾰족하고 못된 내 말들은 모두 잊고, 아주 멋지고 찬란했던 여행이었다고 기억해 주길.
- p.76
"억겁의 시간이 가도 기록은 남는다. 기록으로 지식이 이어진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대영 도서관의 전시실에서 나는 인간이 가진 그 기록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세월을 견딘 누릿한 책들이 뿜어내는 포스가 얼마나 묵직하고 뜨끈한지 느꼈다. 꽤 오래전 보았던 송일곤 감독 영화 <마법사들>의 포스터에는 이런 카피가 적혀 있었다. "기억하는 모든 것은 사랑이 된다."
대영 도서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나는 스쳐 가는 일상의 작은 풍경들을 기록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 - 일기나 사진, 녹음, 녹화, 메모나 낙서라도 - 을 더 열심히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억하고 기록하려는 의지를 잃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삶을 사랑하는 아주 멋진 태도인 것 같다는 생각에. 그러다 보면 내 마음속 어딘가에 묵직하고 뜨끈한 추억의 도서관이 생겨나지 않을지.
- p. 103
비행기 창문 밖으로 드넓게 펼쳐진 파란 창공을 보는데 미란다 할머니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와 맑은 기운을 품고 있던 눈빛이 어른거렸다. 그래. 미란다 할머니처럼 씩씩하게, 누가 뭐래도 나는 나대로, 귀찮음 따위에 지지 말고, 더 보고 더 알고자 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그렇게.
- p.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