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적어두면 의외로 어떻게든 되는 법이라,

(중략)

시간이란 거침없이 흘러가지만, 그러나 스스로 만들 수도 있다. (p.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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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수많은 무의미한 대화는 무의미하지 않은 대화를 위해 있는 편이 좋다.

무의미하지 않은 대화가 한층 돋보인다.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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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전화에는 조그마한 피리가 달려 있다.

재해 때, 만에 하나 건물에 갇힐 때를 대비해서다.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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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칼은 명암과 관계없이 마른다.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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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상상도 못 했던 하루.

이런 유쾌한 하루가 앞으로의 인생에도 분명 많이 있을 거라고

기대해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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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책을 산 것에 만족하고 더이상 진도를 나가지 않은 게으른 나.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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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은 문외한이지만 피아노를 치고 있으면,

이런 멜로디 뒤에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바꾸는구나,

그런데 다시 처음의 멜로디를 넣어 활짝 펼치고, 우와, 예쁘다!

당신 대단해요! 하고 곡을 만든 사람에게 감상을 전하고 싶어진다.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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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한자 공부할 때는 같은 글씨를 몇 번씩 노트에 써보는 것이

빨리 외우는 지름길이라고 배웠다.

빨리 잊어버리는 지름길은 몇 번씩 보지 않는 것.

어른이 되어 스스로 생각해낸 대처법이다.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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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밖에 내지 않아도 될 말은 세상에 산더미처럼 있다.

술을 못 마시는 나도 한심하긴 하겠지만, 식사란 그 사람이 자란 환경과

소중한 추억과도 관계 깊은 것이어서,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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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자연스러운 사람이 부럽다. 지인 중에도 몇 명 있다.

괜히 우등생인 척하지 않고 명랑하지만, 결코 오버하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않는다. 남의 의견도 들으면서 자기 의견도 얘기한다.

지나치게 배려하지 않는다.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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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왠지 그 메모를 버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소중하게 보관하는 것도

슬퍼서 어떻게 할까 하다 아무 데나 두다보면 어느새 없어져 있다.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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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계획은 실행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소리 내어 말로 하면서 즐긴다고 할까…….

배우고 싶은 것들 이야기도 그것과 비슷한 것.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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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석감을 시험해보니 적당히 단단하다. 그러나 두 사람 다 살 마음은 없다.

좋네, 갖고 싶네 하고 말하고 싶을 뿐.

이런저런 '갖고 싶은 것'이 생기지 않으면 자신의 미래가 점점 쇠퇴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래서 어디 가고 싶다, 배우고 싶다, 사고 싶다, 먹고 싶다고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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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하게 본다는 것은 많은 모래를 체 안에 담는 작업과 비슷하다.

많이 담으면 걸리는 것도 늘어난다. 내 체는 좀 큼직하지만……

그러나 무언가가 도톨도톨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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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이어도 저마다 일을 하는 방식이 있다.

(중략)

일하는 법이 얼마나 치졸한가. 일하는 법은 살아가는 법이 아닌가. (p.194)

 

*

 

지금은 가을 출간 예정인 만화를 손질하고 있다.

잘 그렸다고 생각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든 못 받은 인생은 계속된다.

그러기 위해서도 여러 세계를 많이 봐두어야겠다고 다짐한다.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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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저절로 할 줄 알게 되는 것이 있다.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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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격 중에 마음에 드는 부분.

'한 가지 일에 실패해도 내 전부가 엉터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점을 가장 좋아한다. 어째서 흔들림이 없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믿음이 있어서 쓰러지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을 믿는 것도 중요하다.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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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나는 일심동체가 아니다.

애초에 등장인물과 일심동체라면 만화는 그릴 수 없다.

같은 기분을 공유하는 순간은 많이 있지만, 그리는 사람은

만화의 전부를 훨씬 더 먼 곳에서 보고 있다.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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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이라 붐비는 백화점 지하에서 "오징어 튀김 100그램 주세요." 하고

말하는데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 들었다.

그런 외로움은 고독 종류가 아니라 무력감 같은 것이다.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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