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삼례역에서 기차가 운다, 뿡뿡, 하고 운다, 우는 것은 기차인데

울음을 멀리까지 번지게 하는 것은 철길이다, 늙은 철길이다

 

저 늙은 것의 등뼈를 타고 사과궤짝과 포탄을 실어나른적 있다

허나, 벌겋게 달아오른 기관실을 남쪽 바닷물에 처박고 식혀보지 못했다

곡성이며 여수 따위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반하지 못했으므로

단 한번도 탈선해보지 못했으므로 기차는 저렇게 서서 우는 것이다

 

철길이란, 멀리 가보고 싶어 자꾸 번지는 울음소리를

땅바닥에 오롯이 두 줄기 실자국으로 꿰매놓은 것

 

그 어떤 바깥의 혁명도 기차를 구하지 못했다

철길을 끌고 다니는 동안 서글픈 적재량이 늘었을 뿐

 

그리하여 끌고 다닌 모든 길이 기차의 감옥이었다고

독방이었다고, 그 안에서 왔다갔다하면서 저도 녹슬었다고

 

기차는 검은 눈을 끔벅끔벅하면서 기어이

철길에 아랫배를 바짝 대고 녹물을 울컥, 쏟아낸다

 

 

- 안도현 《간절하게 참 철없이》p.22 <기차>

 

 

 

*

 

며칠 후에 타게 될 기차 생각에, 문득 떠오르던 이 시.

 

배반하지 못했으므로,

단 한번도 탈선해보지 못했으므로

 

그 어떤 바깥의 혁명도 구하지 못한 저 늙은 것, 기차는 저렇게 서서 우는 것이다.

 

제일 좋아하는 교통 수단이 기차인데,  KTX보다는 무궁화호가 그저 좋은 나로서는

이 시를 읽고 난 뒤 기차를 탈 때마다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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