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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어지기 1초쯤 전에
무라야마 유카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높은 파도는
수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안과 초조함의 대상이지만
서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말로 할
수 없는 기쁨과 스릴을 안겨준다고
오스왈드
챔버스가 말했다.
이애경
『그냥
눈물이 나』
p.43
언제 어디서건 흔들리는 청춘을 만나게
될 때면,
오스왈드
챔버스가 말했다는 이 말을 나는 어김없이 떠올리곤 한다.
청춘이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들이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높은 파도라고 할 때,
청춘은 그
파도를 불안과 초조함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수영을 하는
사람들 같았달까.
나의 청춘이
그러했고,
그리하기
때문에 나는 수영을 하는 사람들 편에서 높은 파도를 생각했다.
물론,
말로 할 수
없는 기쁨과 스릴을 안겨준다고 생각하는 서핑을 하는 사람들에 속하는 청춘이 있을 수도 있다.
청춘이라고
해서 모두 다 같은 청춘이 아니며,
모든 청춘이
다 불안하고 초조한 청춘이란 법은 없으니까.
이 책,
무라야마
유카의 『견딜 수 없어지기
1초쯤 전에』의 두 화자,
미쓰히데와
에리를 보면서도 어김없이 위 구절을 떠올렸다.
재밌는
건,
두 사람은
수영을 하는 사람들인 동시에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두 주인공이
마주하는 현실은 서핑 선수인 미쓰히데가 매일 마주하는 바다처럼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거칠게
그들을 집어삼켰다가 물러나기를 반복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청춘 성장 소설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여성과 남성,
이 두
가지 성만 있는 것이 아니며 연애의 형태는 무한하게 존재하고 그 사람의 성별은 육체가 아니라 마음으로 결정된다.
내가 이
책에서 얻은 지식은 간단히 말하면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 내용을 이해한 것은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지금 이 순간인 것 같다.
(p.326)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혀 온
에리와
그런
사고방식이 옳은지,
아니면
그래도 연명 치료를 해서 1분이라도
오래 살게 해주는 것이 옳은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건 영원히 답을 낼 수 없는 난제인지도 모른다.
두 가지
모두 옳은 점이 있고 또한 그른 점이 있다.
그러니
각자 자신의 뜻에 따라 선택할 수밖에 없다.
(p.430-431)
아버지가 원한 안락사 문제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끝내 답을
내야했던 미쓰히데.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닮은 꿈틀거림이 나를 희롱하고 헤엄치게 한다.
바다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지.
그녀가
바다를 품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도전의 대상이며 영원히 대립할 수밖에 없는 저 바다를 너무도 쉽게 몸속에 품고 있었다.
(p.374-375)
미쓰히데는
에리가,
자신에게는
도전의 대상이며 영원히 대립할 수밖에 없는 저 바다를 너무도 쉽게 몸속에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하지만,
책을 읽은
내게는 그런 미쓰히데도 이미 바다를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쓰히데는
오래 전부터 바다 위에 있었으니까.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높은 파도를,
말로 할 수
없는 기쁨과 스릴로 생각하는,
서핑을 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고민이 그토록 괴로웠던 것은 고민이 말끔히 해결되지 않는 한 그 고민이 평생 나를 괴롭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민이
몰고 오는 아픔에 익숙해지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그 무렵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p.328)
앞서 말했던,
수영을 하는
사람과 서핑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한다.
높은 파도를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수영을 하는 사람은,
고민이 몰고
오는 아픔에 익숙해지는 법,
즉 그 파도를
기쁨과 스릴로 느끼는 서핑을 하는 법을 알아가면서 서핑을 하는 사람이 된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서핑을 하듯,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민이 몰고 오는 아픔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성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