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시간
파비오 볼로 지음, 윤병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 『내가 원하는 시간』과 함께 읽은 에세이 『어쩌다 내가 아빠가 돼서』표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빠나 아들 중에 어느 한쪽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야 그 사랑을 느낀다면 이는 너무 늦다. 살아 있을 때, 내 눈에 보일 때, 그때 소통해야 한다.

 

비단 아빠와 아들간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살아 있을 때, 내 눈에 보일 때, 그때 소통해야 된다는 걸 우리는 안다. 쉽지 않아서 문제지만. 『내가 원하는 시간』의 주인공 로렌초 역시 다르지 않다. 창피해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에게 드디어 성공의 길이 열리는 순간, 그는 아버지를 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서로 상처를 준 채 아버지와 점점 더 멀어진다. 그런 그에게도 운명 같은 사랑이 찾아오지만 사랑을 할 줄도, 받을 줄도 모르는 로렌초는 결국 그녀를 떠나보내고 만다. 그로부터 2년 뒤, 아버지가 건강 검진을 받던 날 암일 수도 있다는 결과가 나오고, 헤어진 그녀는 두 달 뒤에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사랑하지만 한 번도 가깝게 느껴본 적이 없는 아버지, 사랑했지만 이제는 떠나버린 여인. 삶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모든 것을 되찾기로 결심한 로렌초.

 

이 책이 흥미로웠던 것은, ‘혈연’인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연’인 그녀와의 이야기가 함께 다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길면 길고, 짧으면 짧았다고 말할 수 있을 2년의 시간이 로렌초에게는 애석하게 길기만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2년이라는 시간은, 혈연간의 정을 되돌릴 순 있어도 연인간의 정을 되돌리기엔 너무 길었다 말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모든 내일을 단 하루의 어제와 바꿀 수 있다면…’하고 소망하며 노력하는 로렌초의 마음이 절절해서, 안타까웠다. 앞으로의 모든 내일을 내주고서라도 단 하루의 어제와 바꿀 수 있다면 하고 소망하는 건,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소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봤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누군가 그랬다. 돈으로 행복한 삶은 살 수 있어도 행복을 사진 못한다고. 이 책 『내가 원하는 시간』을 읽고 있던 중에 읽게 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줄 곧 이 말에 대해 생각했다. 영화 <만추>에 대한 한줄 평으로 ‘사랑은 시간을 선물하는 일’이라 말하던 영화 평론가 이동진님의 말처럼, 행복 역시 시간을 선물하는 일이라서, 돈으로 행복하게 보이는 삶을 살 순 있어도 행복은 살 수 없다. 진정한 행복이란, 상대방이 순수하게 나를 위해 내어주는 그 시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마음을 우리는 행복이라 부르고, 굳이 행복이라 명명하지 않아도 그 순간 느껴지는 그 온전한 마음을 우리는 행복이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인상 깊었던 구절

 

책을 읽는다는 건 멋지고 매력적인 일이다. 하지만 똑같은 책을 다시 읽을 때는, 그 책은 거의 불가항력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읽은 책에 다시 흥미를 느꼈던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스토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세계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소설 속의 세계, 상황들이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비추어질지 궁금했고 무엇보다도 그 세계가 나를 다시 받아줄 수 있는지 혹은 내 안에 들어와 숨 쉴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마음에 쏙 드는 책을 읽으면 몇몇 페이지들이 나를 변화시키는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책을 다시 읽게 되면 이번에는 내가 그 페이지들 속의 내용을 변화시킨다. (p.168-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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