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아빠가 돼서 - 아빠, 그 애잔한 존재들에 대하여
유승준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영화 <소원>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은 본 서평을 멀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작년에 본 서른 편의 영화 중 ‘올해의 영화’라며 최고로 꼽았던 영화는 <소원>이었다. 모 영화 블로거님의 평처럼 ‘처참한 상황을 선동하지 않고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가를 이야기하던 영화 <소원>에서 내가 가장 집중했던 부분은 아빠(설경구)와 딸 소원이(이레), 부녀(父女)관계였다. 딸의 처참한 상황을 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해도 손이 떨려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이 목이 메는 아빠. 영화의 후반부, 그런 아빠마저도 결국 폭발하고만 법정씬에서 “집으로 가자”며 아빠의 손을 잡던 소원이. 힘든 시간이었을 테지만 법정에 참석해서 범인을 지목하는 일을 해낸 건, 소원이 역시 범인이 죗값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소원이가 집에 가자며 아빠의 손을 잡고, 아빠는 그제야 정신이 든다. 그 상황에서 소원이는 이성을 잃은 아빠를 말리고자 했던 걸까. 어떤 생각이 들어, 행동에 옮긴 것이었을까. 그건 아마도 아니, 당연히 아빠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범인의 죄를 법으로 다스릴 수 없다면 자신의 손으로라도 처단하고 싶어하는 아빠 이전에, 소원이의 ‘아빠’로서 소원이에게 최선을 다해 힘이 되고자 한 아빠였다. 사건이 일어난 그때가 떠올라서 아빠를 멀리했던 소원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가까이 다가가고자, 아빠는 소원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코코몽’ 탈 인형을 쓰고 소원이 앞에 나타난다. 그 무더운 여름, 더위 속에서도 묵묵히 탈 인형을 쓰고 소원이 주위를 맴돌며 등∙하교를 챙기던 아빠의 노력을 알아준 소원이가 탈 인형의 머리를 들어올려 아빠의 땀을 닦아줄 때까지.

 

 

서론이 너무 길었다. 대뜸 영화 <소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 다름이 아니고, 이 책 『어쩌다 내가 아빠가 돼서』를 읽으면서 자연스레 ‘아빠’가 떠오르는 영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소원>을 보고 한 번도 글로 정리한 적이 없는데, 이번 기회에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책의 구성 덕분이었다. 喜(희) 아빠의 미소가 필요한 순간들, 怒(로) 자녀를 분노하게 만드는 아빠들, 哀(애) 때로는 아빠도 눈물을 흘린다, 樂(락) 힘들어도 웃는다, 나는 아빠니까 라는 ‘희로애락’ 총 네 파트로 나눠서 영화와 책 속의 아빠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앞서 언급한 <소원>의 아빠는 怒(로)를 제외한 喜(희),哀(애),樂(락)에 해당되는 아빠였던지라 많은 작품 속 그 어떤 아빠보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 같다. 프롤로그 속 작가의 말마따나 소설과 영화는 인생의 축소판이고, 그 안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무궁무진하게 담겨 있다. 한국∙외국 소설과 한국∙외국 영화가 각각 여섯 편에 담긴 아빠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자연스레 내가 읽고, 본 책과 영화 속 아빠들이 떠오른다. 앞서 언급한 영화 <소원>을 비롯해, 영화 <어바웃 타임>, 책 『7년의 밤』의 두 아빠 최현수와 오영제, 영화 <화이>의 아빠들 등등. 내가 읽고, 본 모든 작품과 이 책에서 언급되는 소설과 영화에서 그려지는 아빠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조금이나마 내 아빠를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되었기도 하다.

 

 

아빠는 더 이상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는 슈퍼맨이 아니며, 가족과 함께 걷는 인생길의 한 동반자일 뿐이라는 것을. 아빠와 자녀 어느 한쪽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야 그 사랑을 느낀다면 이는 너무 늦으니, 살아 있을 때, 내 눈에 보일 때, 그때 소통해야 된다는 것을. 이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알고 있지만’ 어렵다고 말하지 말고, ‘알고 있으니’ 잘 하자, 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