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배진수 글.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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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이전에 웹툰으로 금요일을 처음 접했을 때, 떠오른 영화 대사가 있다.

 

“니, 감당이나 할 수 있겠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이끼> 속 이장 천용덕의 대사다. ‘감당이나’라는 말에서부터 감춰진 진실의 어마어마한 무게가 느껴지지만, 왠지 그 진실, 파헤치고 싶어진다. <禁曜日>을 처음 접했을 때, 내 느낌이 딱 이랬다. 감춰졌던 진실이 주는 그 불편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

 

꽤나 그로테스크한 그림체에 담긴 불편한 공포. 스토리는 궁금한데, 그림체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질 않았던 작품이었는데 그림체 때문에 스토리를 포기할 순 없다고 판단하고는 1회 ‘원룸’을 감상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그림체는 더욱 그로테스크했고, 스토리 역시 기대 이상으로 탄탄했다.

 

감히, 누군가의 정서나 철학에 작디작은 파문이라도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습니다.

 

- 배진수 『禁曜日』작가의 말 中

 

작가의 말에 드러난 작가의 바람처럼, <禁曜日>은 불편한 공포와 기괴한 그림체로 다가와서 내 정서를 마구 헤집었다.

 

“꼭 나가야 하나? (중략) 어쩌면 난 동물이었을지도…….” (원룸 中)

“잘 선택해봐. 선택은 사소할지 몰라도 결과는 사소하지 않으니까.” (역행 中)

“그러다 문득, 문득 깨달았다. 내 삶에 몇 번의 기회가 주어지든, 나라는 놈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과거로 돌아왔다고 해서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고 해서 나라는 인간 자체가 변할 리는 없다는 너무나 슬프고 또 무서운 사실을.” (역행 中)

“불현듯 내가 빠져 있는 딜레마의 정체를 깨달았다. ‘행복’이나 ‘만족’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닌 ‘불행’과 ‘불만’이 해소될 때 주어지는 반대급부일 뿐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말이다. 즉, 모든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은 결국엔 모든 소원이 사라진다는 말과 같은 의미인 것.” (퍼펙트 월드 中)

“학생은, 언제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네요.” (카르마 中)

 

지극히 극단적이고,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불편함. 바로 이 불편함이 ‘진실’이 아닐까. 마주하기 두려워서, 혹은 영원히 외면하고 싶은 진실.

 

무엇보다 이 만화가 무서운 이유는 이거다. 만화가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이 만화를 읽음으로써 우리 속에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 나라고, 『禁曜日』 속 캐릭터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선택을 했을까. 이 책의 홍보 문구처럼, 생의 이면을 들출 용기가 없다면 이 책을 금(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정말이지, 니, 감당이나 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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