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박정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퇴근하기 위해 출근한다.”

 

직장에서 출퇴근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나왔던 말이다. 우스갯소리였기에 대화를 하던 그 순간에는 다 같이 웃고 넘어갔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씁쓸해지는 말이었다. ‘퇴근’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삶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이를테면 피로, 책임감, 월급 같은 단어들. 우스갯소리로 그치지 않고 내게 남은 이 말은 의외로 자극이 되고 힘이 되었다. 나 또한 퇴근하기 위해 출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자문(自問)하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인정하게 될 때면 ‘오늘은 인정하되 내일은 인정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자’하고 다짐하게 하는 말이 되었다.

 

위 이야기는『그늘의 계절』과『64』의 거장, 요코야마 히데오 최고의 출세작이며 문예춘추 걸작 미스터리 1위, 일본 서점대상 2위 수상작인 이 책, 『클라이머즈 하이』를 읽고 가장 먼저 떠올렸던 말이다.

 

과거 후배 기자의 사고사로 죄책감에 시달리며 데스크 승진을 거부하던 지방신문 기자 유키 가즈마사는 어느 날, 산악회 동료와 함께 악마의 산이라 불리는 쓰이타테이와에 오르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출발하려는 날 밤, 지역에 있는 산인 오스타카에 524명의 사상자를 낳은 최악의 여객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다. 이 사건 보도의 총괄 데스크로 지명된 이는 다름 아닌 유키.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회사로 소환되어 일분일초 피를 말리는 보도 전쟁에 뛰어든다. 한편, 함께 산을 오르기로 약속했던 동료는 의문의 사고로 식물인간으로 발견되고 유키는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거지”라는 그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특종에 대한 통제할 수 없는 욕망과 저널리스트로서의 치열한 고뇌, 신문사라는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비열한 암투, 유키는 두 개의 거대한 ‘악마의 산’ 사이에서 점점 궁지로 내몰린다.

 

식물인간이 되어 끝내 그의 입으로 듣지 못했던,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거지.”라는 안자이의 말은, 유키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그렇게 느꼈던 것은, 안자이의 아들 린타로의 말마따나 눈을 뜬 채 침대에서 자고 있는 안자이의 상황과, 저널리스트로서의 유키가 직면한 신문사 내에서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취재경쟁과 권력다툼으로 인한 마찰로 인해 진정 실으려고 했던 기사를 싣지 못하는, 신문이 아니라 신문지를 만드는 신문사의 상황과 미스터리에 싸인 사건으로 인해 눈을 뜬 채 자고 있는 안자이의 상황이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안자이의 말을 동력삼아 살아가던 유키는 과거 사고사로 세상을 떠난 후배 기자의 사촌 여동생 아야코를 만나면서 ‘생명’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이건 제 나름대로 생각한 작은 생명에 관한 것입니다. ‘마음’에 실어 주셨으면 합니다. 전에도 한 번 투고한 적이 있었지만 버려진 듯합니다.”

(중략)

스무 살. 유키의 절반 밖에 살지 않은 여자아이가 미디어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생명의 무게.

어떤 생명도 모두 소중하다고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미디어는 인간을 선별하고 차별하고 생명의 경중을 판단해서 그 가치관을 세상 속에 밀어붙인다.

위대한 사람의 죽음. 그렇지 않은 사람의 죽음.

불쌍한 죽음. 그렇지 않은 죽음. (p.381-382)

 

아야코가 투고한 글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유키는 생각했을 것이다.

 

“난 신문을 만들고 싶다. 신문지를 만드는 것은 이제 참을 수가 없어. 바빠서 보이지 않을 뿐이야. 긴타칸토는 죽어가고 있어. 위에 있는 인간들의 장난감이 되어 썩어가고 있어. 이 투고를 구겨버린다면 너희들은 평생 신문지를 만들게 될 거야.”

 

생명의 무게와 그에 관한 미디어의 본질이자 역할, 그리고 자신이 다 할 수 있는 최선에 대해.

 

생명의 무게. 크기. 아야코의 투고를 실은 것은 긴타칸토에게, 신문이라는 미디어에게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이었을까. (p.416)

 

편집국은 어제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모두가 아무 일 없는 척 하고 있었다. 때로는 차갑다고 느끼기도 했고 또 따뜻하다고도 생각했다. 행복한 시간. 그랬는지도 모른다.

마음은 잠잠했다.

역시 그만두고 싶었던가. 그 기회를 얻어 조직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인가.

가슴에 안자이의 말이 떠올랐다.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거지-.

안자이도 같은 기분이었을까. 스스로를 얽매고 있는 곳에서 내려오기 위한 의식. 쓰이타테이와의 등반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클라이머즈 하이…….

안자이의 예견이 맞는지도 모른다. 입사 17년, 사람들의 혼잡함 속을 헤치고 나가듯 기자의 길을 돌진해 왔다. ‘내려간다’는 것 따위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안자이는 꿰뚫어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려가고 싶어 하는 유키의 내면을. 아니 내려가지도 머물러 있지도 못하고 어중간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화를 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려갈 것을 결심한 안자이는 유키에게 쓰이타테이와를 권했다.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도대체 넌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건가’ 하고. (p.420)

 

신문사를 떠나고 안자이를 다시 찾은 유키는 고백한다. 비웃어 달라고. 자신은 내려가지 못했다고. 앞으로도 꼴불견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거지-.

안자이의 말은 지금도 귓가를 맴돌고 있다. 하지만 내려가지 않고 보내는 인생도 잘못된 인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있는 힘껏 달린다. 넘어져도 상처를 입어도 패배를 맛보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계속 달린다.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은 의외로 그런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클라이머즈 하이. 오로지 위를 바라보며 곁눈질 하지 않고 끝없이 계속 오른다. 그런 인생을 보낼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p.429-430)

 

안자이는 내려가고 싶어 하는 유키의 내면을 읽었고, 유키는 그런 안자이의 말에 담긴 뜻을 이해했지만 내려가지 못했다 대답했다. 아니, 내려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려가지 않는 것이다. 내려가고 싶어 보였다는 말의 다른 말은 위에 머무르고있다는 말이다.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건, 유키는 현재의 삶을 위해 쉼없이 달려왔다. 불우했던 과거와 먼저 떠나보낸 후배 기자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40대 가장의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지고, 저널리스트로서의 소신을 지켜내며 말이다. 안자이의 말을 이해하게 되면서 유키는 뒤늦게 위에서의 행복을 찾은 것 같았다. 유키의 말처럼,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은 의외로 그런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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