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해피엔딩 - 황경신 연애소설
황경신 지음, 허정은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어디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남자는 자기가 더 사랑하는 여자를, 여자는 자기를 더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야 행복하다’고. 이렇게 살고 있진 않지만, 결국 이렇게 살고 싶은 나는 이 말을 믿는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와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나를 더 좋아해주는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라도.

 

그런데, 여기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여자가 있다. 황경신의 연애소설 『모두에게 해피엔딩』의 ‘나’가 바로 그런 여자다. 여자를 사랑해주는, 여자보다 10살 어린 남자 에이. 에이는 여자보다 자신이 여자를 더 사랑하고, 여자는 자기를 더 사랑해주는 에이를 만나고 있으니 앞서 말한 말대로라면, 둘은 행복해야 맞다. 하지만 둘은 행복하지 않았다. 여자에겐 여자가 더 사랑하는 비가 있었으니까.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여자는 비를 생각했고, 여자는 비를 위해 살아 있었다. 인터뷰차 만났던 남자를 통해 듣게 된 비의 마음도 여자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남자의 말에 따르면 비는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을 사랑했다고’ 말했다 했고, 비가 세상에 태어나 사랑한 단 한 사람은 여자였다. 하지만 우리네 뜻대로 되는 게 사랑이라면, 그건 사랑이 아닐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고, 그 인생 속에서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내 인생은 너무 많이 읽어서 그 내용을 다 외워버린 한 권의 책과 같다. 한 발은 에이, 다른 한 발은 비에 담근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지지부진하게 세월을 낭비하고 있는, 죽어가는 나무와 같다. 수 년 동안 그 모든 것들이 되풀이되어 왔다. 나는 비를 사랑하지만 비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에이는 나를 사랑하지만 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두 사람을 끊어내는 일이 가능하지 않다면 내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도 수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망설였고, 몇 번이나 같은 자리로 돌아왔으며, 무엇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p.183-4)

 

둘에 대한 마음을 수 년 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망설였고, 몇 번이나 같은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건, 더와 덜의 차이가 있었을지라도 여자는 둘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잊어야하는 에이와, 자신이 잊어야하는 비를 말이다. 비의 진심을 전해준 새로운 인물 ‘남자’를 만나면서 여자는 비로소 둘을 놓는다. 에이와 비와 그 둘을 사랑한 자신 모두에게 해피엔딩을 위해. 어쩌면, 모두에게 해피엔딩의 해피엔딩은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 ‘최선’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는 하림의 노래처럼, 여자는 남자를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비는 결혼을 하고 에이는 여자를 잊고 새로운 여자와 사랑하는, 그렇게 그들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는 최선. 책장을 덮고 모두의 해피엔딩을 떠올리는데, 나는 조금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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