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릴리 블레이크 지음, 정윤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지난 5월 개봉한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을 책으로 먼저 만났다. 공교롭게도 지난 5월에 ‘백설공주’를 소재로 한 영화는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만이 아니었다. <백설공주>라는 제목의 영화도 개봉했었는데, 두 편 다 보지 않았지만 선택해야 했다면 나는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을 선택했을 것이다. 누가 감독하고, 누가 출연하고를 떠나 ‘백설공주’를 다루는 두 작품을 비교했을 때 ‘앤 더 헌츠맨’이 붙은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이 더 끌렸기 때문이다. 사냥꾼의 재해석이라.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고보니 어릴 적 읽은 『백설공주』 속 사냥꾼을 떠올렸을 때, 그의 ‘결정’은 인상 깊었지만, 그의 퇴장은 굉장히 흐릿하지 않았던가.

 

  “그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공주를 없애 버려야겠다.”

  왕비는 은밀히 사냥꾼을 불렀습니다.

  “숲에 가서 백설 공주를 죽이고 오너라.”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사냥꾼은 공주를 데리고 숲으로 갔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공주는 마냥 즐거워했습니다.

  그런 공주의 모습을 보자, 사냥꾼은 차마 공주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사냥꾼이 공주에게 말했습니다.

  “공주님, 성으로 돌아가시면 죽습니다. 빨리 먼 곳으로 도망치세요.” 이 말을 마치고 사냥꾼은 성으로 돌아갔습니다.

 

  위에 인용한 구절은 실제로 내가 어릴 적 읽었던 삼성출판사의 『생각하는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 세계명작 : 백설공주』 속 구절이다.한 쪽에는 글이, 한 쪽에는 그림이 있는 책인데 그림에 담긴 사냥꾼의 모습은 백설공주를 등지고 말과 함께 성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이 전부다. 세계명작인만큼, 많은 버전의 『백설공주』가 있겠지만, 내가 읽은 『백설공주』 속 사냥꾼은 이러했다.

  그랬던 사냥꾼이 2012년, 새롭게 태어났다. 검을 쥐고 스스로의 길을 만든 백설공주와 함께. 백설공주와 이름을 나란히 한 만큼 ‘에릭’이라는 이름도 생겼고, 죽은 아내에 대한 트라우마도 가졌다. 그렇게 사냥꾼 에릭은 백설공주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동시에, 백설공주만큼이나 독립적인 캐릭터로 전개의 중심에 있는 캐릭터였다. 난 여기서 이 책의 매력을 느꼈다. 사냥꾼의 재해석은 곧, 사냥꾼의 재발견이 되었다는 것. 명작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인만큼 기존의 틀을 가지고 가되 이야기는 달라야 하는데, 이야기를 새롭게 만드는 힘을 사냥꾼에 두고, 사냥꾼이라는 캐릭터를 힘있게 끌고 가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사냥꾼의 퇴장이 허전하지 않았냐고? 맞다. 허전했다. 허전함을 넘어서 허무할 정도였다. 알고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더라. 속편이 나온단다. 아직 이른감이 있지만, 커밍순이다.

 

  사냥꾼 이야기를 접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먼저, 저자에 대한 이야기. 책을 받아들고, 영화 포스터로 만들어진 표지에 심취해있다가 뒤늦게 저자를 봤는데, 적잖이 당황했다. 블레이크 도허티 핸콕 애미니 지음이라니? 사람 이름이 이렇게 길리는 없고, 어떻게 된거지 싶어서 살펴보니 책을 집필한 사람은 릴리 블레이크고, 각색한 건 존 리 핸콕, 호세인 아마니, 애번 도히티며 영화 원작은 애번 도히티가 썼단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이 모두 들어가 블레이크 도허티 핸콕 애미니가 된 것.ㅋㅋ

  영화 원작의 이야기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쓰인 글이라 그런지, 전형적인 소설이라기보다는 영화를 소설로 읽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가독성은 좋았지만, 조금은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다른 캐릭터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자. 먼저, 가장 짠했던 여왕, 라벤나. 사악함에 있어서는 원작의 왕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뒤지지 않는 라벤나지만 그녀에겐 충분히 납득이 가는 사연이 있었다. 왕의 군대가 자신이 속한 집시 부족의 마차를 이 잡듯이 뒤져서 집시들을 모조리 끌어내 처참하게 죽여 버렸던, 암울한 과거의 기억. 그 기억의 끝에는 복수만이 남았다. 또한 마법을 쓰게 되면 급속하게 노화하는 마법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는 것. 원작의 왕비가 단순히 미모에 집착했던 것에 비하면, 라벤나의 집착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짠했다. 그녀를 지탱하는 힘이 복수심에서 백설공주의 심장을 차지해 영원불멸한 아름다움을 얻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 바뀌었을지라도.

  입체적인 두 캐릭터에 비해 주인공인 백설공주는 다소 평면적이다. 여전사 공주와 민폐 공주 사이 가운데에서 갈팡질팡하는 느낌. 해먼드 공작과 아들 윌리엄 때문인가 싶기도 했다. 힘이 들 때면, 기댈 구석이 있는 캐릭터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심심한 느낌도 들었고.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