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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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새 안경을 맞추기 위해 안경점을 찾았다. 시력 검사를 마치고, 안경테를 고르고 안경이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안경사와 고객의 대화가 들려왔다. 그들의 대화가 들리기 시작한 건 둘 다 여성이었던 안경사와 고객이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이 동갑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한 사람은 결혼했고, 다른 한 사람은 곧 결혼 예정이라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떠들썩해진 순간부터였다. 이야기는 점점 두 사람의 사적인 부분으로 들어갔으므로 나는 이야기를 더 이상 듣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둘 말고는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계속해서 듣게 됐다. 결혼을 앞둔 고객은 ‘하객’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친구가 얼마 없어서 이러다가 정말 돈을 들여 알바를 고용해야할 것 같다며 쓰게 웃었다.

  그 둘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이렇게 풀어쓰게 된 건 비단 그 고객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 고객이 정말 결혼식 당일, 자신의 친구 역할을 대행해 줄 사람을 고용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가 존재하고, 심지어는 대행업체까지 있는 우울하지만 엄연히 사실인 이야기다. 

 

  하객 아르바이트를 고용한다고 하자. 그 사람이 결혼식 당일, 하객으로 참석해서 결혼식을 지켜봐주고 단체사진을 찍는 친구 한 명이 되어 줄 순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지금부터 시작 될 내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며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전자는 당장 돈으로 살 수 있을지 몰라도 후자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이야기는 이 책,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으며 떠오른 내 실제 경험담이다. 내 경험담으로 글을 시작한 건, 이 책 역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예로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책 전반에 있어 예를 들면서 주제에 관해 논하기 때문에, 책을 읽기에 앞서 막막한 느낌이 앞섰던 내게는 이 책을 시작하고, 마지막까지 집중 있게 읽게 한 큰 힘이 되었다.

 

  내게 큰 힘이 되었던 예시들은 크게 새치기, 인센티브, 시장은 어떻게 도덕을 밀어내는가, 삶과 죽음의 시장, 명명권이라는 5가지의 대주제로 나뉘어 책 곳곳에 녹아들었다. 그 덕분에 각각의 대주제가 가지는 중심 주제가 내 머릿속에서 온전하게 정립되고, 나아가 그 주제에 관한 고민을 계속 해 나가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대주제가 생각이 안 날지라도, 예시를 떠올리면 대주제가 생각나지 않을까.

  예시에 관한 예찬이 길었는데, 아무래도 미국인이 쓴 책이다 보니 예시 또한 미국이나 외국에서 행해지는 일에 대한 예시이다 보니 내 일상과는 조금 거리가 먼 예시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국과 내 일상에 맞춰 예시를 대입해서 책을 읽었다. 대표적으로 대주제 ‘명명권’에 나오는 예시 중에 이런 예시가 있다.

 

  3년이 지나 배리 본즈(Barry Bonds)가 한 시즌에 홈런 73개를 치면서 맥과이어의 기록을 깼다. 관람석에서는 73번째 홈런공을 잡기 위한 추한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기나긴 법적 논쟁으로 이어졌다. 홈런공을 잡은 팬이 그 공을 잡으려고 몰려든 사람들 무리에 떠밀려 바닥에 넘어졌던 것이다. (p.231)

 

  이 예시를 읽으면서 나는 2009년에 한국 프로야구 통산 2만 번째 홈런이 기록된 날을 떠올렸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배리 본즈의 73번째 홈런이 있었다면, 한국 프로야구에서는한화이글스 연경흠의 통산 2만 번째 홈런이 있었고, 홈런공을 잡기 위한 추한 싸움 역시 미국뿐만 아니라 부산 사직구장에서도 볼 수 있었다’라는 식으로 예시를 대입해 더 친숙하게 받아들임으로써 ‘명명권’의 주제를 더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처럼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실제 일어난 일에, 한국에서 실제 일어난 일을 대입 할 수 있는 것은 명명권을 넘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해당하며 우리 인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시장은 훌륭한 선택과 저급한 선택을 구별하지 않는다. 거래하는 쌍방은 교환 대상에 어떤 가치를 둘지 스스로 판단할 뿐이다. (p. 33)’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시장과 상업이 재화의 성질을 바꾸는 상황을 목격했다면 시장에 속한 영역은 무엇이고 시장에 속하지 않은 영역은 무엇인지 의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화의 의미와 목적, 재화를 지배해야 하는 가치를 놓고 깊이 사고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p. 274)

 

  시장에서 태연하게 거래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만 했지, 사고하려 하지 않았던 내게 있어 정곡을 찌른 구절이다. 내가 사고하지 않고, 생각만 하고 있는 동안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여러 문제들은 마이클 샌델의 말마따나 미해결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시장이 우리 대신 결정을 내리도록 허용하게 되는 셈이다.(p. 274)’라는 구절을 마주했을 때, 나는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사고하고 토의한다면 우리는 ‘상충하는 모든 의문에 관해 합의점에 도달(p. 34)’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관해 마이클 샌델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더욱 건강한 공공생활을 형성할 것이며, 또한 무엇이나 거래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살아갈 때 치러야 하는 대가를 좀 더 의식하게 될 것이다.(p. 34)’라며 덧붙인다.

 

  옳고 그름에 대해 정확한 답이 없는 문제인 만큼 저자 또한 해결책이나 답을 제시하지 않으며 어느 쪽이 선(善)이고 선(善)이 아닌지에 대한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끝까지 물음을 던질 뿐이다.

 

  따라서 결국 시장의 문제는 사실상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관한 문제다.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도덕적⋅시민적 재화는 존재하는가? (p. 276)

 

  저자가 쉬이 해결책을 제시하고,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특정한 사람들에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이며 인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물음처럼 정말이지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지, 그 아무리 ‘돈’이라 할지라도 살 수 없는 도덕적⋅시민적 재화는 과연 존재하는지에 관한 끝없는 물음을 던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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