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게임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여기 평범한 걸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의 이름은 ‘굶주림’이란 뜻의 'hunger' game이다.

 

 

  소설의 배경은 폐허가 된 북미 대륙에 건설된 독재국가 '판엠'. 판엠의 중심부에는 '캐피톨'이라는 이름의 수도가 있고, 모든 부가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주변 구역은 캐피톨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그로부터 시작된 판엠의 피비린내 나는 공포 정치를 상징하는 것이 앞서 말한 '헝거 게임'이다. 헝거 게임은 해마다 캐피톨을 둘러싼 12구역에서 각기 두 명씩의 십대 소년 소녀를 추첨으로 뽑은 후, 한 명만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 죽고 죽이게 하는 잔인한 유희다. 또 이 모든 과정은 24시간 리얼리티 TV쇼로 생중계된다. 마침내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경기장'에 던져지는 스물 네 명의 십대들. 죽지 않으려면 먼저 죽여야 한다. 이제 오직 단 한 명의 생존자를 가려내기 위한 잔혹한 게임이 시작된다.

 

  소설의 시작은 제 74회 헝거 게임에 참여할 아이들을 '추첨'하는 날이다. 만 열 두살이 되면 추첨 대상이 되고, 추첨 대상이 된 첫 해에는 유리공 안에 이름이 적힌 쪽지가 한 장 들어간다. 만 열세살이 되면 두 장 들어간다. 그런 식으로 매년 한 장 씩 늘어나서, 마지막 해인 만 열여덟 살 때는 일곱개의 쪽지가 들어가게 된다.

  추첨 대상에 대한 기준은 나름 '공평'한 축에 속한다. 앞으로 언급할 추첨 시스템에 비하면 말이다. 이 추첨 시스템으로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12번 구역을 "안전하게 굶어 죽을 수 있는 곳."이라 표현하는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과 같이 가난해서 배를 곯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웃지 못할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유리공에 이름을 더 집어넣으면 배급표를 받을 수 있다. 배급표 한 장은 한 사람이 1년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만큼의 곡식과 기름에 해당한다. 또 가족들을 위해 이런 식의 거래를 여러 번 하는 것도 허용된다.

  탄광에서 폭발 사고로 아빠를 잃고, 엄마와 동생 프림을 책임지는 가장이 된 캣니스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유리공에 이름을 더 집어넣는다. 그렇게 해서 유리공 안에는 올해 열여섯 살인 캣니스의 이름이 스무 장 들어가 있다. 올해 열여덟 살이고 7년째 혼자서 다섯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게일의 이름은 도합 마흔 두 장이다. 먹고 살기 위해 추첨에서 뽑힐 확률을 높일 수 밖에 없는 암울한 현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평범한 걸 기대해서는 안 되는 헝거 게임답게, 12번 구역에서 몇 안되는 기분 좋은 곳 중 하나인 광장에서 추첨이 열린다.

 

  캣니스도 어쩔 수 없는 '추첨' 대상이 되는 만 열두 살. 캣니스의 동생 프림도 만 열두 살이 되어 처음으로 추첨에 참가하게 된다. 캣니스는 프림 앞으로 배급표를 받는 일을 절대 없도록 하였기 때문에 유리공 안에 든 프림의 이름은 한 장. 뽑힐 확률은 가장 낮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헝거 게임 시즌이 되시기를! 그리고 확률의 신이 언제나 당신의 편이기를!" 이라는 대사가 트레이드마크인 12번 구역 담당 수행원 에피 트링켓이 종이쪽지 한 장을 집어 꺼내 호명한다. 다행히 캣니스의 이름이 아니다. 동생 프림로즈 에버딘이다.

  프림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 캣니스의 머릿 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캣니스는 무대에 오르는 프림을 붙잡는다. 그리고는 숨을 헐떡이며 외친다. "내가 자원할게요! 내가 조공인으로 자원할게요!"라고. 그렇게 캣니스는 헝거 게임에 참가한다.

 

  '서바이벌'하면 생각나는 일본 영화 <배틀 로얄>을 떠올린다. 칼부림 영화(칼 외에도 여러 무기들이 나온다지만)를 못 보는 탓에 영화의 도입부밖에 보지 못했지만, 헝거게임은 배틀 로얄의 설정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뒤지지 않는다. 헝거 게임에 관련된 수많은 설정 중에 가장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설정은 ‘24시간 리얼리티 쇼로 생중계’라는 설정이다. 게임에 참여하게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게임을 보는 것을 의무로 하여 이를 갈며 시청하게 만든다. 이와 대조적으로, 게임이 끝난 후에 경기장은 유적으로 남고 그대로 보존되어 캐피톨 주민들이 놀러 가거나 휴가를 보내는 인기있는 관광지가 된단다. 그 곳에서 캐피톨 주민들은 한 달 동안 머무르며 지난 헝거 게임을 다시 시청하고, 지하묘지 투어를 하며, 조공인들이 죽음을 맞은 현장들을 방문한다. 심지어 재연에 참가할 수 있다니.

  이런 무시무시한 설정들에 비해,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죽어나가는 대목의 수위는 약한 편이다. 그게 <배틀 로얄>과 <헝거 게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배틀 로얄이 설정보다는 죽는 장면의 수위가 센 편이라면, 헝거 게임은 수위는 약하되 설정이 센 편이다. (물론 배틀 로얄의 설정은 헝거 게임과 비교했을 때 약한 편이지, 배틀 로얄만을 놓고 봤을 땐 전혀 약하지 않다. 그 당시에는 굉장히 파격적인 설정이었으니까.)

 

  내가 헝거 게임을 오롯이 읽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배틀 로얄보다는 수위가 약하고, 매체가 '영화'가 아닌 '책'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주인공 캣니스의 내면 심리 묘사 덕분이었다. 부재한 아빠를 대신해 가장이라는 막중한 책임감을 지니고 살아온 캣니스라 그런지, 여자아이임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런 강인한 면모 뒤로, 12번 구역 멘토 헤이미치에 대해 생각하는 대목이라던가, 12번 구역에서 함께 참가한 피타와의 과거, 현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대목, 루와 카토를 비롯한 다른 구역의 참가자들에 대해 생각하는 대목이 그려진다. 소설 곳곳에서 캣니스의 내면 심리를 묘사함으로써, 캣니스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더한다.

 

  주인공 캣니스와 함께 소설의 흐름을 이끄는 캐릭터 피타는 이렇게 말한다. "그저 내가 계속 바라고 있는 것은캐피톨이 나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줄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뿐이야. 나는 그저 헝거 게임의 작은 한 부분이 아니고, 그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피타의 말을 통해 게임에 참여한 모든 아이들은 결코 헝거 게임의 일부가 아니며, 비록 게임이라는 궁극의 엔터테인먼트에 가려졌을지라도, 판엠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 이상의 존재다. 이러한 생각에 도달한 캣니스가 소설의 후반부에 꾀하는 반전이 무척이나 짜릿하고 재밌었다.

  판엠에 헝거 게임이 행해지는 것처럼, 모든 시대는 각자의 공포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도 억압하고 통제하는 자가 있고, 억압과 통제를 받는 자는 자유를 위해 저항하며 살아간다. 캐피톨의 무자비한 폭력과 힘이 200% 묻어나는 헝거 게임 속에서 캣니스의 모험 아닌 모험을 통해 우리는 캣니스가 활을 쏘아 목표물에 명중했을 때처럼 통쾌함을 느낀다.

 

 

  영화 <헝거 게임>을 개봉을 앞두고 읽게 되어서 나만의 캣니스를 상상하며 읽는 재미는 없었지만 캣니스 역으로 제니퍼 로렌스를 캐스팅한 건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제니퍼 로렌스의 눈을 보고있으면, 캣니스 에버딘도 저런 눈이 아닐까 싶은 생각 덕분에 소설에 더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래는 인상깊었던 구절 모음.

 

  "너보다 훨씬!"

  다시 나를 놔두고 무대 앞으로 걸어 나간 헤이미치가 카메라에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외친다.

  "너보다 훨씬!"

  관객들에게 하는 말일까, 아니면 너무 취해서 대놓고 캐피톨을 비난하는 것일까? 그가 다음 말을 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무대 아래로 떨어져 의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진실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p.29)

 

  "정확히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저… 나는 내 자신으로서 죽고 싶어. 그게 말이 되나?"

  피타가 묻는다. 나는 머리를 흔든다. 자기 자신으로 죽지 그럼 누구로 죽겠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간 후에도 난, 그들 때문에 변하고 싶지 않아. 내가 아닌 다른 어떤 괴물로 날 바꿔놓는 그런 거 말이야."
  나는 열등감을 느끼며 입술을 깨문다. 내가 숲이 있을지 없을지를 고민하고 있는 동안, 피타는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순수하게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p.147)

 

  어느 때보다 작아 보이는 루, 그물로 만든 둥지 속에 웅크리고 있는 아기 동물 같은 루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루를 이대로 버려둘 수가 없다. 이제 더 이상 고통을 느낄 수도 없는, 너무나 무방비한 모습. 1번 구역 남자애도 죽고 나니 약해 보인다. 그를 미워하는 것도 부적절한 것 같다. 내가 증오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하게 만든 캐피톨이다. (p.235)

 

  헝거 게임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으면서도,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자기가 어디 있었는지, 자기가 뭘 하고 있었는지, 자기 기분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좀 우습다. 모든 이야기는 경기장에서 죽어가는 소년 소녀들이 아니라 자기들에 대한 화제뿐이다. 12번 구역에서는 이런 식으로 헝거 게임에 빠져 들지 않는다. 우리는 게임을 보는 게 의무이기 때문에 이를 갈며 시청하고, 끝나자마자 되도록 일상생활에 전념하려고 애쓴다. 준비 팀을 싫어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아버린다.(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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