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그림자를 읽다 - 어느 자살생존자의 고백
질 비알로스키 지음, 김명진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T.S.엘리엇이 '죽은 땅에서 라일락이 자라는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한 4월을 앞둔 3월말. 뉴스에서는 어김없이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뉴스에서 우울증을 표현하기를 '마음의 감기'라 한다. 낯설지 않다. 뉴스에서 우울증이 언급될 때면 흔히 나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헌데, 이 책 <너의 그림자를 읽다>를 완독하고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감기'라는 표현이 좀 걸린다.

 

  '안정적이고 평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절망을 껴안고 살기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사람의 내적인 연약함을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p.37)'라는 구절처럼, 의식하지 않았지만 나 역시도 안정적이고 평탄하게 살아온 모양이다.

 

  이 책은 <너의 그림자를 읽다>라는 인상깊은 제목만큼이나 '어느 자살생존자의 고백'이라는 부제 또한 인상깊었다. 그 중에서도 '자살생존자'라는 단어가 가장 강렬했다.

  '자살생존자(Suicide Survivor)', 가까운 사람을 자살로 잃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며 일반인보다 높은 2차 자살의 위험성에 노출되며, WHO에 따르면 한 명의 자살자가 주변의 8명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자살'과 '생존자'라는 단어의 조합이 생소했지만, 자살생존자의 고백이 어떤 고백일지 궁금해졌다.

 

  1990년, 21살이었던 여동생 킴 엘리자베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자살생존자가 된 저자 질 비알로스키는 책의 시작하는 말에서 본인의 개인적인 얘기뿐만 아니라 가족사까지 들춰내야 한다는 도덕적 딜레마와 복잡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자살은 누구에게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쓰고 있는 이유다. (p.18)' 라고 밝히면서 본격적인 '고백'을 시작한다.

  저자의 고백이 깊이있게 다가왔던 이유는, 저자 자신도 '킴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한 인간이 끔찍한 고통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이라는 잔혹한 일은 충격적이고 비극적이긴 해도 추상적인 개념으로 느껴졌다. (p.15)'는 구절 때문이었다. 마치 내가 가진 '자살'이라는 개념을 글로 풀어놓은 것 같았다. 저자가 동생 킴의 자살로 인해 자살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다면, 나는 저자의 고백을 통해 자살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세울 수 있었다.

  도입부에서 언급했던 T.S.엘리엇의 '죽은 땅에서 라일락이 자라는 가장 잔인한 달' 4월에 대해 저자는,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받았던 엘리엇은 날씨와 기질의 관계를 이해했던 것 같다. 4월은 그야말로 잔인한 달이다. 자살이 겨울에 많이 일어날 거라는 통념과는 달리 4월의 자살률은 다른 달 평균보다 12퍼센트나 높다.' (p.40) 라던가 '예를 들어, 자살하는 사람은 정신이상자라는 오랜 믿음이 있었지만, 그들은 자살하는 사람의 15퍼센트만이 정신병자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자살의 위험이 큰 사람들은 그 상태가 단기간만 지속될 뿐이며, 그러므로 외부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p.129)와 같은 이론적인 개념을 비롯해서 자살에 대한 여러 연구로 알게 된 사실들이 이에 포함된다.

 

  저자 질 비알로스키가 가족의 역사와 심리학, 철학, 문학을 넘나들며 동생의 내면이 붕괴되는 과정을 재구성한 '심리 부검'을 통해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킴 엘리자베스라는 사람을 알게 되고, 그녀의 죽음에 대해 함께 애석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동생 킴을 향한 저자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이자 소설가답게 책 곳곳에서 저자 자신의 시와 여러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킴의 죽음을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중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실비아 플라스의 시는, 전공 수업 중 시 수업 때 접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단순히 실비아 플라스만을 생각하며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실비아 플라스의 시가 다시 읽혔고, 그녀의 시를 통해 킴의 내면을 추측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정말이지 울컥, 했던 구절이 있다. 저자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S 박사와의 대화 중에,

 

  그는 만약 자신이 킴의 치료사였다면, 킴에게 두 가지 질문을 했을 거라고 말했다. "어디가 아프죠? 어떻게 도와줄까요?" 그가 이 말을 했을 때,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너무나 간단해 보였다. (p.327)

 

  라는 구절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질문으로 자살을 결심한 사람의 마음을 쉬이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질문으로, 어쩌면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기분이 더 좋아지고 싶었지만 그 방법을 몰랐던 사람의 손을 잡고, 그를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저자는 심리 부검뿐만 아니라, 자살생존자 모임에도 참여한다.

 

  모임이 끝난 후 나는 그 부부에게 다가가 그들의 눈을 바라보며 손을 잡고는, 고개를 돌리거나 그들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유감이라고 말했다.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가치 있는 일이다.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p.330)

 

  저자가 결코 쉽지 않은 심리 부검을 계속 해나가고, 이 책을 집필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남편과 입양한 아들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불안해하거나 걱정하는 기색 없이 이해심 어린 표정으로 저자를 바라보고, 저자 본인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라고 말해준다. "못할 게 뭐 있어?"라는 말도 덧붙인다. 아들 루카스 또한 자신 나름대로 심리 부검하는 엄마 곁에서 이모인 킴의 자취를 바라보며 저자에게 힘이 되어준다. 아름다운 아이와 착실한 남편이 있어 멋지고 든든한 인생을 가진 자신이 행운아라고 느끼는 저자이기에, 심리 부검을 통해 동생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다른 자살생존자들을 위로하며, 그 노력을 책을 통해 전파할 수 있었지 않나 생각된다.

 

  "누군가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가 말했다.

  "용기를 내서 물어봐야죠." 그가 말했다. (p.328)

 

  내 가까이에도 스스로를 죽음에 맡기려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자살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비단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 어떤 인간도 섬은 아니다. 그 혼자서 완벽하지 않으므로. /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자 / 전체의 한 부분이다.'

  영국 시인의 존 던이 쓴 유명한 시 구절처럼, 우리 모두는 그 혼자서 완벽하지 않으므로, 때때로 도움을 주거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와중에 '가장 나쁜 일'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 때,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주고, 큰 힘이 될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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