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내가 행성세계에서 겪은 지난 일들 또한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퇴적시킨 말과 행동과 기억들은 거대한 소용돌이 속의 지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하고, 시간과 함께 깎이고 잘려나가 소멸하는 게 필연적인 운명일 수도 있겠다. 내 기억뿐 아니라 이은하, 네 기억과 삶 역시 해부되고 빛바래고 덧칠되어 가까운 미래엔 전혀 다른 모습의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부딪힌 일들이 전부 아무 의미 없는 난수 암호에 불과하고, 내 마지막 임무는 운 나쁜 사고였을 뿐이며, ‘비파’에게 이양한 긴급명령은 사실 해마가 관여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모든 게 시시한 장난과 다름없고 그저 상처받은 인간과 미쳐가는 해마가 작당해 벌인 실수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문목하 장편소설, 유령해마 p.349-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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