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소설 : 김이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책에 대한 내 취향과 별개로 이 책에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남았다.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이었다. 오랜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는 날이었고, 나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서서 용산구의 어느 카페에 앉아 이 책을 읽고 있었다.

챙겨나간 책은 김이설 작가님의 장편소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대학생 때 『나쁜 피』를 시작으로 김이설 작가님의 책을 두 권 더 찾아 읽었는데, 두 권 모두 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책이었다. 지독해서 읽기 어려운데 그 지독한 면으로 말미암아 여운이 엄청난 책. 그래서 이번에도 읽어보기로 했고, 소재가 소재인지라 궁금하기도 했다.

시를 쓰고 싶었다. 오늘은 쓸 수 있을까. 생각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 어쩐지 나는 보통의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보통의 삶이라고 규정지은 것들, 학교와 직장과 적당한 수입, 가족을 일궈 안정적인 일상을 꾸리고, 노후를 준비하며 일생을 보내는 일련의 과정들. 그 과정을 영위하기 위한 현실적인 실천 의지 같은 것들. 그런 것에 흥미가 없었으므로 가지고 싶은 열망도 없었다. 일반적인 삶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자, 그제야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p.61-62)

뭐지, 이거. 주인공 '나'가 하는 많은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같았다. 그저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고, 변화나 시끄러운 걸 좋아하지도 않았으며 몸을 움직이는 놀이 역시 즐겨하지 않았다.(p.57-59)

나는 주인공만큼 글쓰기가 간절한 사람은 못 되었지만 여러모로 닮은 면이 많았고, 그래서 내 모습을 투영해 읽었다.

그런 주인공을 유일하게 알아봐준 사람은 아버지였는데, 아버지가 주인공에게 해준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선 독서하는 공간이 카페란 걸 잊고 눈물을 쏟을 뻔했다.

ㅡ인생은 길고, 넌 아직 피지 못한 꽃이다. 주저앉지 마. 엄마가 하란 대로 하지도 말고.

-김이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p.117

인생은 길고, 넌 아직 피지 못한 꽃이다. 이 말은 주인공의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돈다.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여 책을 읽던 내게도 자꾸만 맴돌았다.

지난 10월 29일, 많은 이들이 떠났다. 나는 도무지 말을 고를 수가 없어서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그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또 다른 지옥을 살다가 떠났다는 기사를 읽었다. 나라를 구하다 죽었냐며 비난을 일삼은, 본인이야말로 무지몽매한 시의원의 기사도 읽었다. 진상규명은 커녕 가해를 일삼고 자신이 공인인 걸 잊었다며 변명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그날 이후로 몇 번이고 마음 속에 천불이 났는데, 이날도 그랬다.

당시엔 화를 삭이지 못했다. 거친 말만 쏟아내다 정작 해야할 말을 못할까봐 애써 묻어두었던 말을 전한다. 늦었지만 진심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인생은 길고, 아직 피지 못한 꽃들이 많이, 너무 많이 떠났지만 부디 주저앉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소설과 10.29 참사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나, 내겐 자동완성처럼 남아버린 일이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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