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바름 씨는 1년 동안 동남아시아 일주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 적은 나이도 아닌데 아직 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나는 긴 여행이라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는 눈으로 지켜봤다. 다른 일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무엇을 결정하고 행동할 때마다 자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지 걱정할 때가 많다. 김바름 씨는 단호한 성격이라 다른 사람 눈치 보는 걸 싫어한다. 그래도 마음이 흔들릴 때는 《자본》 1판 서문 마지막에 마르크스가 옮겨 적은 《신곡》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중심을 잡는다. “너의 길을 걸어라, 누가 뭐라 하든지! Segui il tuo corso, e lascia dir le gent!”

(p.59-60)

지금껏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갖고 있는 책 양과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책을 아주 많이 갖고 있더라도 마음 깊이 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서재라고 할 것도 없이 사는 사람인데 책을 향한 애정이 누구 못지않게 큰 사람을 많이 봐왔다. 책이 많다고 해서 모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우리는 때로 무엇을 소유하는 것과 그 대상을 좋아하는 것이 같다고 말한다. 전혀 다른 얘기다. 어려운 철학책을 파고들 필요도 없이 사람을 만나고 그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조곤조곤 들여다보면 금세 안다. 무엇을 마음 깊이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가지려 하기보다, 자기 곁에 쌓아두려 하기보다 자유롭게 놓아주는 일을 즐긴다.

(p.67-68)

우리는 때로 아무 이유 없이 책을 읽는다. 목적이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책을 대하기도 한다. 책은 말없이 사람들 앞에 놓여있다. 책을 어떻게 읽을지는 모두 사람들이 생각할 일이다.

(p.112)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으니 어릴 때 본 책 얘기를 꺼낸다. 50권짜리 ‘계몽사 소년소녀 위인 전집’은 아직도 내용을 잊지 않았다. 심지어 한 권 한 권 내용이 눈에 선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책을 많이 보게 하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자기 신체 리듬에 책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들여놓으면 나중에 무슨 일을 하든지, 인문학 연구자가 아니라 몸을 쓰는 운동 선수가 되더라도 거기서 직관의 능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집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많은 게 참 중요합니다. 연구자들이 고민해야 할 게 자기 집에 얼마나 많은 책을 쌓아두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도서관을 지을 수 있게 하느냐라고 생각해요.”

(p.124-125)

책을 한 번 읽고 그냥 덮어두면 안 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책은 바뀌지 않지만 사람이 바뀌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드는 책이지만, 그 책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만들어간다는 말이 맞다.

(p.152)


정리한다고 7년 만에 다시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저렇게 접는 일이 드문데 정리할 책이라 생각하니 접는 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사두고 아직 읽지 않은 책들도 정리할 책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덜 귀하게 여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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