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단단한 것이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타인의 아침이 막연하고 낯설 만큼, 각자의 일상이란 견고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어느 날 불쑥 나타난 작은 균열 하나에 쉽게 무너지는 것이기도 하다. 별 다른 일 없이 반복되는 오늘이 내일로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너무나 단단해서 연약할 수밖에 없는 일상을 흔들림 없이 지키는 일은 그래서 필사적이고 절박한 일이다. 일단 쳇바퀴에 올라 탄 이상 쉬지 않고 달려야만 하고 그것이 쳇바퀴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일 뿐이다.

“절망은 허망이다. 희망이 그런 것처럼.” 루쉰은 말했다. 절망이든 희망이든 모두 허망한 것이라고. 이건 어딘가 조금 잔인한 농담처럼 들리기도 한다. 희망이 없는 대신 절망도 없다면 그러한 세계의 허망한 정도는 어떻게든 견딜 수 있을 거라고 나를 달래듯이 말해본다. 어떻게든 시간은 또 흘러갈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과 그럼에도 별로 나아질 건 없으리라는 비판 사이에서 그럭저럭 대충 살고 싶다고 말하는 한편으로 무언가에 전력을 다하는 삶.

일상에서 벗어나 크고 위대한 것을 추구하는 데서 오는 아름다움. 현실 세계를 초월해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숭고한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라고 한다. 내가 가진 미의식이 남다를 리 없겠지만 나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그것의 허망함을 알면서도 지키고자 애쓰는 사람들에게서 숭고함을 느낀다. 나 혹은 누군가의 일상을 지켜낸다는 것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일처럼 보이고, 약하고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는 것은 아무래도 크고 위대한 일이다. 언제나 각자의 숭고함이 안녕하기를.

밤이 늦었다. 내일은 월요일이다.

-김민영, 농담과 그림자 p.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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