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지는 채로 인생이 계속되지는 않는다. 인생에는 나아지는 순간이 있지만 그 순간이 짧다는 게 문제다. 각성과 반성이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 후에도 인생의 실패는 여전하다.
깨닫고 자책하고 새 삶이 열리기를 기대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순간만 그렇다. 삶은 부메랑처럼 언제나 돌아간다. 자기만 알고 상처를 주고 망쳐버리는 데 익숙한 바로 그 순간으로.

-『술과 농담』 p.28
편혜영, 몰(沒) 9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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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는 슬픔이나 우울 같은 감정은 잘 감췄지만 기쁜 마음은 감추지 못하는 편에 속했다. 아마도 마음에 드는 잔을 발견하곤 들뜬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슬픔을 다루는 방식엔 나름 일가견이 있지만 기쁠 때 어쩔 줄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그건 그동안 기쁜 일이 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경험 부족. 말하자면 기쁨 부족. 나는 생각했고, 그럴 때마다 "기쁜 거랑 행복한 게 다르다는 걸 사람들은 잘 몰라"라던 보라의 말을 곱씹곤 했다. 이어지던 보라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것도.

-『술과 농담』 p.141-142
이주란, 서울의 저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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