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로 인생의 포커스가 먼 미래가 아닌 '지금 바로 여기'에 맞춰졌다. 그전까지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을 희생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었다. 카페에 갔으면서 에스프레소는 주문하면서 몇백 원 비싼 아메리카노를 차마 주문하지 못하는 가난한 마음.

나는 그 몇백 원짜리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왔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행복하지 못하면 내일이 되어도, 먼 미래에도, 타히티에 간다 해도 행복은 없다.

지나친 도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커피를 마시면서 때때로 마음의 여유에 대해 생각한다. 커피를 마시는 허상의 이미지에 자신을 담기 위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지만 때때로 커피는 '내가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는 걸 완벽하게 느끼게 한다. 그 순간은 내가 만들어낸 '커피를 마시는 나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것이다. 커피는 내 몸으로 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p.57)

나는 반쯤 고의로 나에 대해서 이런저런 오해를 하게 내버려두었다. 정확하게 알게 하는 것은 언제나 두려움을 동반하니까.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에 어떤 식으로든 길을 내고 싶다는 유치한 욕망도 있었다. 즐거움의 길보단 괴로움의 길을 내는 게 더 쉬워 보였고. 이제는 너무 늦은 얘기가 되어버렸지만, 그를 제대로 아는 게 존중이 아니라 그가 나를 제대로 알도록 해주는 게 존중이라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그가 가진 것을 내게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닌 것을 온전한 형태로 그가 받아볼 수 있도록 전달하는 섬세한 마음, 그 정성이 존중인 것 같다. 사람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을 때마다 성장하고 덜 어리석어진다면 좋겠지만, 그냥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아는 여전히 어리석은 사람이 될 뿐인 것 같다.

(p.88)


김영하 작가님 인터뷰에서 인상 깊게 본 구절이 생각난다.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소설은 ‘감동적인 데 막상 밑줄을 치려고 하면 어디에 쳐야 할지 모르는 소설’이라고. 뺄 것도 없고 더할 것도 없어 보이는 작품.

내겐 정은 작가님의 에세이 『커피와 담배』가 그랬다. 이 구절이 좋다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전문을 언급해야 해서 포기했다. 이 부분이 좋았던 이유는 이이이이이-부분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할 순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구절을 추려보았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행복하지 못하면 내일이 되어도 행복은 없다는 것. 그를 제대로 아는 게 존중이 아니라 그가 나를 제대로 알도록 해주는 게 존중이라는 것.

이전 글에서 이 책의 구절 하나를 소개한 적이 있다. 책장 아래 자리를 선호하는 손님이 했던 말. 커피의 맛은 공간의 합이다. 그 구절을 읽던 그날, 내가 마신 커피의 맛에는 이 책도 합쳐졌다는 생각이 든다. 커피는 지금 바로 여기서, 내 몸으로 감각하는 것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