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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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을 완독했다.

1.

2021년 김연수 다시 읽기의 첫 책으로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었다. 지난 여름 내게 왔으나 뜻하지 않은 일로 읽기를 미룬 책이었다. '다시' 읽기 위해서는 마지막에 가진 책부터 읽는 것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는데, 완독한 지금에야 그 생각이 옳은 생각이었음을 알았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토록 강요받던 찬양시를 마침내 쓰는 마음과, 그뒤 삼십여 년에 걸친 기나긴 침묵을 이해하기 위해 지난 몇 년 동안 옛말과 흑백사진과 이적표현의 미로를 헤매고 다닌 작가의 선물과 같은 이야기.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실패한 것이며 자신의 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시인과, 그가 살아보지 못한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던 소망을 그려낸 작가. 반 년이나 늦어졌지만 끝까지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

소설의 시/공간적 배경과 그 안에서 쓰이는 말이 어려울 때면 나는 내가 챙겨 보았던 뮤지컬 작품들을 생각했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혜산역 대합실 한켠에서, 어떤 두려움이나 부끄러움도 없는 선한 표정으로 그녀는,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라며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그런 곳에서, 오랜전에 잊어버렸던 시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니 그의 목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치밀어올랐다. 여학생 시절, 국어 선생을 따라 외웠다는 그 시의 한 음절 한 음절은 쇠도끼 날처럼 그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p.196)

젊은 소설가가 이십 년 전의 일을 끄집어내니 자연스레 기행도 그때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리게 됐다. 그즈음 그는 도쿄의 기치조지에서 살면서 아오야마학원 영문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그 이듬해 졸업을 앞두고 멀리 눈 쌓인 후지산이 보이는 이즈반도를 한 바퀴 여행하고 서울에 돌아와보니 구인회라는 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 구인회의 멤버 중에서 이상과 유정은 젊어서 죽고, 기림과 지용은 전쟁 뒤에 생사를 알 수 없게 됐으며, 상허와 구보는 북으로 와 이십 년 전의 일을 추궁받고 있었다.

(p.98-99)

전자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이고 후자는 '팬레터'. 뮤지컬 덕후이기에 가능한 독서였지 싶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거기에 뭐가 적혀 있는 줄 알고 그걸 가져와? 북조선이라고 엔카베데(NKVD)기 없겠어? 남의 일에 끼어들어 좋을 게 하나도 없다구."

(p.37)

는 미드나잇 시리즈를 떠올리게 했고, 소수민족들의 언어와 민요 등을 채집할 테이프 레코더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선 영화 '콜드 워'가 떠오르기도 했다.

3.

다시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랑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불행해지는 것쯤이야 두렵지 않아서.

(p.32)

소설 전체를 통틀어 나는 이 구절에 가장 마음이 쓰였는데, 이어지는 준의 말 때문이었다. "이제는 자네가 자네의 시보다 더 불행해지지 않았으면 해." 전선을 따라 끌려다니며 기행이 맡긴 시에 많이 의탁했던 준이 조곤조곤 낮은 목소리로 다그쳤고, 기행은 대답 대신 어느 틈엔가 손바닥만한 마당을 희뿜하게 비추고 있는 달빛을 바라봤다.

'희붐하다'는 표현을 찾아 보았는데, '날이 새려고 빛이 희미하게 돌아 약간 밝은 듯하다'라는 뜻이었다. 순하고 여린 것들로 북적대던 아름다운 시절이 끝나고 찾아온 적막에, 사랑을 증명할 수 있다면 불행해지는 것쯤이야 두렵지 않은 그가 다시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모습을 표현한 우리말인 것만 같았다.

4.

작가님이 이 소설을 쓸 때 자주 들었다는 음악 3곡을 이 글에 기록해둔다.

김계옥, <눈이 내린다> (옥류금 연주)

아와야 노리코 <남의 마음도 몰라주고>

바흐의 칸타타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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