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안아주기 - 소확혐, 작지만 확실히 나쁜 기억
최연호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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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클럽문학동네 3기 마지막 뭉클찜 도서로 이 책 <기억 안아주기>를 읽었다.

우리는 왜 나쁜 기억을 두려워하는지에 대해 풀어놓는 프롤로그와 기억, 회피, 개입, 소확혐, 관점, 오류, 망각, 치유라는 여덟 장에 걸쳐 나쁜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가 나쁜 기억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가에 대해 풀어놓는 에필로그로 마무리되는 책이다.

2.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장은 제2장 회피에서 손실 기피에 대해 삼풍백화점을 언급한 것과 제5장 관점에서 한나 아렌트가 이야기한 악의 평범성을 언급한 것이었다. 이 두 이야기에 대해 대략 알고는 있었지만, 나쁜 기억에 관한 심리학의 관점에서 읽게 되는 것은 처음이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제2장, 회피. 손실 기피 현상.

지금은 나에게 손해가 주어지지 않았는데 앞으로 벌어질지 모르는 손실을 예상해 미리 걱정하고 여기에 집착하면서 합리적이지 못한 행동을 저지르게 된다. 문제는 이것의 결말이다. 손실을 미리 걱정한 나 자신의 어설픈 행동이 아무 일 없이 끝나는 경우도 많겠지만 누군가의 피해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피해가 미미할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재산 피해는 물론 인명 사고에 이르기까지 한다.

(p.72)

이미 천장이 뒤틀리고 바닥이 가라앉는 모습을 확인한 상황에서도 붕괴 2시간 전 마지막 긴급대책회의에서 회장은 임원 대다수의 즉각 영업 중지 의견을 무시하고 영업과 병행하는 구조 보강을 지시했다고 한다. 인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이 한 사람의 손실 기피로 인해 휘발된 것이다.

제5장, 관점. 한나 아렌트가 놓친 아이히만의 '평범성'.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 재판에서의 아이히만을 지켜보고 '악의 평범성'에 대해 보고했다.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는 것. 나 역시 여기까지 생각하고, 무사유가 얼마나 큰 문제인지 인지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아렌트가 놓친 것에 대해 덧붙인다.

아렌트가 놓친 것은 인간의 원초적 두려움이다. 히틀러 집단에 동조하지 않았다면 목숨을 내거는 것이 되었는데 소수는 그랬을 수 있지만 대다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은 너무나 평범하게 모든 이가 가지고 있는 본능이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쉰들러도 두려워했고 스필만도 두려워했으며 하물며 히틀러도 몹시 두려워했다. 아이히만도 두려워했을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그가 무사유에 상투어만 쓰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평범하기에 그는 더욱 두려움을 피하려고 본능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p.199-200)

여기서도 손실 기피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나쁜 기억이 있다면 그리고 나쁜 기억에 취약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다시는 같은 경험을 하기 싫으므로 손실을 피하려는 두려움이 높아지고 결과에 대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과정 중시자라 하더라도 두려움이 과정에 끼어드는 순간 결과라는 종착지에 가는 길에 변수가 되어버린다. 두려움 많은 아이히만은 이렇게 결과 중시자가 되어갔다.

(p.201)

이 부분만 옮겨와서 혹여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덧붙이자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아이히만은 무사유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두려움을 피할 수 있는 결과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을 택했다. 나는 이 부분이 아이히만을 설명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저지르는 일에 대해서 사유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사유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손실 기피 현상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욕심에서 비롯되고, 타인의 희생으로 끝났다는 것이 뼈아팠다.

3. 뭉클찜 미션 활동 중에 4장 소확혐을 읽고 버리고 싶은 기억은 메모지에 써서 버리고 가자는 미션이 있어서 작지만 확실히 나쁜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나는 어렸을 때 손톱을 물어 뜯는 버릇이 있었다. 안 좋은 버릇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쉽게 버리지 못한 버릇이었다. 그런데 이 버릇을 하루 아침에 버리게 됐다. 사연을 이야기 하자면 이렇다. 때는 중학교 1학년 수학 시간이었다. 나는 제일 뒷 줄에 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었고, 그날도 어김 없이 손톱을 물어 뜯고 있었다. 내 버릇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도 아니었고, 요란한 것도 아니어서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무슨 심경으로 그랬는지 몰라도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나를 타박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더러운 손톱을 먹고 있을 거냐고 했다. 수학 시간 특유의 나른함이 달아나고 아이들의 시선은 뒷 줄에 앉아있던 내게 향했다. 나는 발 끝에서부터 올라오는 모욕감에 안절부절 못했다. 선생님이 던진 이야기가 팩트는 맞는데, 어째서 수업 시간에 이러는 것인지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거기서 끝내지 않고, 내가 당시 머리에 꽂았던 큰 똑딱핀을 보고 바퀴벌레 같다고 했다. 아이들은 그 표현에 공감하며 웃었다. 나만 수업이 끝날 때까지 웃지 못하고 버텨야만 했다.

해바라기 오태식의 대사가 떠오른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속이 후련했냐! 아니 손톱 물어 뜯는 게 보기 싫었으면 수업 끝나고 따로 불러서 훈계했음 될 일 아닌가? 거기다 바퀴벌레 이야기는 대체 뭐였을까? 내가 뭘 했다고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을까?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에게 이야기 하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고1도 아니고 중1이었는데. 그게 뭐라고.

무슨 짓을 해도 버릴 수 없었던 버릇을 그날 학을 떼며 버렸다. 나쁜 버릇과 등가 교환하기에 그날의 지적은 뼈아팠다. 여전히 잊지 못하는 기억으로 남았으니까. 그날의 영향으로 나는 사람들에게 망신 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생겼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그날 지적한 것은 나의 잘못이었기 때문이다. 훗날 돌아보니 잘못된 것은 그날 선생님이 나를 그렇게 지목하고 비난한 태도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치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8장에 관심이 컸다. 이 책에서는 크게 믿음, 명상, 자각에 대해 나쁜 기억을 극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첫째, 믿음.

내가 옆으로 제쳐놓았더라도 내 안의 어딘가에 있을 '믿음'을 찾아서 가져와야 한다.

(p.298)

둘째, 명상.

몸이 평안함을 느끼면 전에는 압도당하기만 했던 나쁜 기억을 말로 표현할 수 있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법도 배우게 된다.

(p.305)

셋째, 자각.

나쁜 기억의 두려움을 가진 나 자신이 느끼는 것이 말단 신체의 감각이건 통증이건 간에 실체를 자각하는 것이 우선이다. 나를 아프게 만드는 것이 나 자신이거나 혹은 어떤 대상이어도 나와 그 대상을 믿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두려운 대상이 두렵지 않음을 자각하는 과정이다.

(p.318)

책에서 제시한 긴 이야기를 생략하고 핵심만 가져오자니 다소 뜬구름 잡는 느낌이지만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제목을 다시 생각한다. 기억을 안는다는 일. 쉽지 않겠지만 우리는 이 과정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 나를 완성시키는 좋은 '나쁜 기억'도 있기 마련이니까.

4. 기억에 관해 언급된 작품들이 인상 깊어서 나중에 '기억'을 관람 포인트로 두고 다시 보려고 메모해둔 것을 덧붙인다.

영화 : 신비한 동물 사전, 인사이드 아웃, 비긴 어게인, 위플래쉬,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첫 키스만 50번째, 메멘토, 블레이드 러너 2049, 토탈 리콜, 이터널 선샤인, 라이온킹

애니메이션 : 톰과 제리

책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말콤 글래드웰 <그 개는 무엇을 봤나>

드라마 : CSI 라스베가스 시즌1 9회

강연 : 범죄과학수사 심리학자 스콧 프레이저의 2012년 5월 테드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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