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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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를 완독했다.

스토너를 읽은 사람들이 왜 그리 스토너를 추천했는지, 1965년에 출간된 이 소설이 어쩌다 50년이 흐른 뒤에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는지 조금은 알겠다.

이 소설로 말할 것 같으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것도, 유려한 문체나 기막힌 표현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인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이 아니다. 그저 때때로 행복했고 평생 고독했던 사람이 자신의 길을 걸어온 이야기다.

“아버지가 가엾어요.” 그레이스의 목소리가 들려서 그는 다시 정신을 다잡았다. “아버지가 가엾어요. 편안한 삶이 아니었잖아요.”

그는 잠시 생각해본 뒤 입을 열었다. “그랬지. 하지만 나도 편안한 삶을 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p.381)

운명이 가혹해서 고독한 삶을 살게 된 것도 아니었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인생의 기로에서 해 온 선택들이 그의 길에 자리한 것뿐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스토너의 악연들이 승승장구하는 것 마저 너무 현실적이어서, 애잔한 마음이 컸다.

요령 피울 줄 모르고, 때마다 사랑하는 것들 앞에서 물러나 체념한 모습이 안타까웠으나 그의 삶이 실패한 삶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애정을 잃지 않았고, 끝까지 지켜낸 사람이었으니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만 같았던 그의 생에서 '업'을 지켜낸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이었는지 지켜봐왔으니 말이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이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절망이 그토록 무거웠다는 것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들뜨다 못해 현기증이 날 것만 같고,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그는 다시 말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p.264)

이 구절을 읽는데,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주인공 '구동백'의 대사가 떠올랐다.

"살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나쁜 일이 생기는 게 슬픈 인생이 아닙니다. 후회할 일이 생기면 교훈을 얻을 수 있고요, 나쁜 일이 생기면 좋은 일의 소중함이라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진짜 슬픈 인생은 살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앞서 기록한 그레이스와 스토너의 대화에서 '편안한 삶'이란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이 아니었을까. 스토너가 본인도 편안한 삶을 원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나쁜 일이 생기는 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살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진짜 슬픈 인생이고, 스토너는 이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스토너의 인생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후회할 일에는 교훈을 얻었고, 나쁜 일이 생겼을 때는 좋은 일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을 테니까. 세계대전과 대공황, 가난과 사랑의 실패를 지나 갑작스러운 병마 앞에서도 그는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했다.

문학을 사랑하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스토너가 본인의 인생으로 끝내 보여준 것은 아처 슬론 교수가 읊어주었던 소네트 같은 삶이 아닐까?

그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대의 사랑이 더욱 강해져

머지않아 떠나야 하는 것을 잘 사랑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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