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38

“작품 완성하려고 무릎까지 꿇었다고 했지? 그런 거 아무나 못해. 난 말이야, 이제 나한테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무릎 꿇는 거보다 더한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진짜 부끄러운 건 기회 앞에서 도망치는 거야.

고태경이 잠시 간격을 두었다가 덧붙였다.

“완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모든 완성된 영화는 기적이야.”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의 말에 가슴 한편이 뜨거워졌다. 콧날이 시큰했다. 고태경이 나의 표정을 흘긋 살피더니 말없이 조수석의 창을 조금 내렸다. 시원한 바람과 소음이 어색한 공기를 채웠다.

p.168

“혜나야. 너 기분 좋아 보이니까 좋다. 그런데 꼭 뭐가 되어야지만 사랑받을 수 있는 건 아니야.

많이 취한 승호가 나에게 헤헤 웃으며 말했다.

“뭐야,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해.”

“그냥 그렇다고.”

그것이 진실이 아니어도, 그렇게 말해주는 승호 때문에 마음이 짠했다. 승호는 빤한 말을 굳이 표현하는 애였다. 꼭 자기 영화처럼 나이브했다. 예전에는 그게 촌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게 내가 갖지 못한 승호의 재능이라는 것을 안다.

p.217

“어떻게 버티느냐고 물었지. 진정으로 응원해주고 지켜봐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돼.”

나는 고태경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건 내가 가지고 싶었으나 갖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술을 마시면 가슴이 달래지기라도 할 것처럼 술을 들이켰다. 술기운이 올랐다. 내가 고태경에게 정말 하고 싶던 질문은 단순히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버티느냐가 아니었다. 영화 속 친구들 말고는 외톨이로 홀로 살면서, 어떻게 버티세요. 사람들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함께 일상을 나누고, SNS를 열심히 하는 것도 삶의 목격자가 필요해서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삶은 너무 쓸쓸하잖아요. 그 외로움과 고독을 어떻게 버티세요.

p.241

“누군가 오랫동안 무언가를 추구하면서도 이루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비웃습니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비웃거나 미워하죠.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게 그런 대접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냉소와 조롱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값싼 것이니까요. 저는 아직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꿈과 열망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제 영화를 상영하는 겁니다.”

관객들이 오오, 하고 박수쳤다. 고태경의 말은 허풍처럼 들리지 않았다.

정대건 장편소설 『GV 빌런 고태경』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