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은 어떻게든 사수해야 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글을 쓰기로 나 자신과 약속한 날, 종일 집에 머물며 아주 천천히 글을 썼다. 평소에는 잘 마시지도 않는 돌체구스토도 한 잔 내려놓고서. 그런 날이면 내 고양이가 낮잠을 자다 말고 그루밍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볕이 가장 좋은 창문 아래 자리를 잡고 앉는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아주 오랫동안 온몸의 털을 싹싹 핥아 다듬는다. 뒷다리를 하늘 높이 번쩍 치켜들고 그루밍할 때는 마치 요가를 하는 듯 우스꽝스러운 자세가 된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한참 동안 몸을 단장하고 나면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다시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낮잠을 청하는 것이다. 잘 보일 애인도 없는 녀석이 굳이 시간을 내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털을 가꾼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글을 쓰고 책을 내는 행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중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나만의 생각과 느낌을 정성껏 고른 언어로 만드는 작업. 이것이야말로 나를 정성껏 가꾸고 돌보는 시간,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래서 다들 글을 쓰는 걸까? 그렇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몸 밖으로 내보낼 줄 아는 삶이란, 굳이 책을 내지 않는다고 해도 그 자체로 매우 근사하고 쓸모 있는 게 아닐까.


- 김먼지, 책갈피의 기분 p.207~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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