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페르메이르Jan Vermeer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그윽하게 관람객을 바라봅니다. 잠깐이라도 소녀와 눈빛을 맞추고 나면 이 그림이 왜 ‘북유럽의 모나리자’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게 됩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이탈리아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취향입니다.) 페르메이르가 그린 소녀의 눈길은 모나리자의 미소만큼 눈길을 끕니다.

이 작품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데는 화가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는 사실도 한몫합니다. 마흔 초반까지 살았던 페르메이르에 대해 알려진 것이라고는 이름과 고향 정도뿐입니다. 일부러 안 썼는지 아니면 사라져 버린 건지 몰라도 별다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작품도 50여 점에 불과합니다. 반면 빈센트 반 고흐는 서른일곱 살까지 사는 동안 줄곧 기록을 남겼습니다. 동생 테오와 친구들한테 보낸 편지만 해도 무려 820통이 넘습니다. 그래서인지 페르메이르는 알려고 할수록 자꾸 그림 뒤로 조용히 숨어 버립니다. 반면 고흐는 쉼 없이 수다를 떨지만 아무도 들어 주지 않는 것 같아 쓸쓸해집니다. (p.292)

특별해서 기록하는 게 아니라 기록하면 특별해집니다. 날씨처럼 사소한 일을 하루이틀 적고 그치면 낙서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적으면 어떻게 될까요? 실제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승정원일기>에는 날씨가 상세히 적혀 있는데 인조 1년부터 순종 4년까지 무려 288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해 놓았습니다. 덕분에 훌륭한 천체관측 자료로도 쓰인다고 합니다. 날씨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그저 꾸준히 끝까지 적으면 됩니다.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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