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이 좋다. 이 말은 다의적이다. 나는 단어와 문장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동시에 책 그 자체에 대한 소유욕도 크다. 언젠가는 서재를 만들려는 욕망도 있다. 나아가 책은 자연스럽게 내 안의 창작 본능도 깨웠다. 책을 읽으면 직접 내 생각과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튀어 나오곤 했다. 영상이 더 지배적인 시대라지만 하얀 종이 위에 펼쳐진 먹색의 글자에 더 끌린다. 나는 이러저러한 의미로 책이 좋다. - P135

사회가 연대하듯 책들도 연대한다. 나는 여러 저자들의 독자가 되었고 나를 중심으로 저자들이 모이면, 그것이 나만을 위한 연대가 되었다. 그들은 나의 앞에 발자국을 내어 길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다. 내 안에 있을 수는 있으나 바깥으로 끄집어내기엔 추동하는 힘이 약한 것들이 있다. 살아가는 데 있어 지혜나 용기라든지, 생전에 다 겪을 수 없는 경험들이 그러하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그것들을 끌어내는, 어떤 감정의 형태나 지혜의 말들을 문장으로 만날 수 있다. 독서를 하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 P141

우울은 항상 내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떤 이유 때문에 우울해지는 게 아니라 우울이 찾아와서 어떤 이유들이 생겨나는 거다. 이런 감정 상태는 내 의견과는 상관없이 막무가내로 진행된다. 거기에 상응하는 이유들도 참 가지가지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한 부담이 우울하다. 건조한 원룸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우울하다. 월세에 시달리는 이 팍팍한 현실이 우울하다. 억지로 끄집어낼 수밖에 없는 부족한 지성이 우울하다. 타인과 신체 이미지를 비교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우울하다. 친구나 가족, 지인과의 관계에 대한 회의감이나 두려움이 우울하다. 간혹 턱에 난 여드름이, 군것질에 대한 식탐이, 월경통이, 혼자 걷는 산책길이 우울하다. 하나하나 죄다 열거하자면 3박 4일은 거뜬히 샐 수 있다. - P1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