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는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였지만 적극적으로 물어보면 의외로 선선히 대답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은수가 연신내에 산다는 것, 연신내의 그 집은 겨울이면 비탈길이 꽝꽝 얼어서 차는 물론이고 사람도 올라가기 힘든 곳에 있는데 해마다 누군가가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 밧줄을 백 미터도 넘게 묶어놓아서 그것을 잡고 사람들이 오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은수는 그 광경이 좋아서 어쩐지 겨울을 기다리게 되지만 아직 눈이 내리지 않았으므로 지금은 매어놓지 않았다는 것도. 그런 게 왜 좋아, 그게 왜, 하고 물으니까 은수는 재밌잖아요, 했다. 붙들 것이 있다는 게 누나는 재미있지 않아요? - P48

내가 그동안 누렸던 것들이 아쉬워서는 절대 아니었다. 다만 우리가 로커룸에서 머리를 맞대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거기에서 나와 모두 잠든 사이 택시를 잡아타고 서울을 누볐던 그 시간들이 뭔가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 아닐까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가 특별해질 수 있었다면 그것이 멈춰져야 하는 데도 일종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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