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글이고 인생은 인생이다. 인생을 글로,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순간은 인생에서 제일 멀리 떨어져 있을 때다. 지구에서 떠나야 푸른 지구의 둥근 수평선이 보이듯이, 격렬한 인생의 사건들을 떠나야 가닥과 맥락이 보인다. 디테일이 뭉개진 지도가 보인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그때 살고 있는 인생이 있다. 인생에 대한 글은 마치 거울의 저편에 놓여있는 나처럼, 나와 닮았지만 나는 아니다. 인생을 닮았지만 인생은 아니다. 아침저녁으로 거울을 보듯, 우리가 인생 속에서 글 쓸 거리들을 찾아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합당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거울 속에 살지 않듯 글이 우리 인생을 살아주지 않는다. 밥 먹고, 잠자고, 걸어 다니고, 웃는 것처럼, 글 쓰는 것 또한 우리 인생의 작지만 생생한 한 부분을 이룰 뿐이다. - P67

작가의 삶과 작품이 아주 밀접하다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끊임없이 그 거짓말이 정말일까? 물어왔을 뿐. 사실, 작가의 삶은 작가의 작품만큼이나 다양하다. 삶을 보며 작품을 가늠할 필요도 없고 작품을 기준으로 삶을 평가할 수도 없다. 작가의 삶은 작품의 땔감도 아니고 작품은 작가의 삶의 액세서리가 아니다. 작가의 삶 또한 하나하나의 작품처럼, 독자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일 뿐이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삶은 더 특별한 이야기겠지만.

오스카 와일드가 자신의 천재성을 삶이 아니라 작품에 쏟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평범한 아저씨로 늙어가고 작품은 대단한 명작 목록에 속속 올랐을까. 그랬다면 그는 만족했을까. 아마도 전혀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욕망은 삶에 있었고, 그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남김없이 불탔다. 그래서 겹겹이 그에게 매혹당한다. 천재의 삶이 아니라 천재적인 삶이라서. - P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