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일은 아니지만 -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기만의 방
홍화정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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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일이 아니다써온 일기를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 작업을 하는 것도그렇게 만든 책을 세상에 선보이는 것도무엇보다 일기를 쓰는 일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일기에는 단순히 있었던 일을 기록하기도 하지만외면했던 나를 마주하고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니까.

 

이 책의 제목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결국 해낸 홍화정 작가님의 4컷의 그림 에세이를 만난 건 지난 2019 서울국제도서전에서였다. 휴머니스트 부스에서 이 책을 보았다. 출간 전 만나볼 수 있는 따끈따끈한 기회였는데구매를 계획했던 책이 아니어서 마음에만 담아두고 돌아왔다얼마 지나지 않아 책을 구매할 일이 생겼고망설임 없이 이 책을 골랐다.

 

표지에 담긴 저 귀여운데 울고 있는 하트들은 어떤 의미일까 싶었는데프롤로그에서 그림일기에 대한 사연이 소개되었다.

 

책이 된 원고는 2016년부터 2019년 1월 1일까지 쓴 일기에서 가져온 이야기들인데이 시기에 작가님은 서울 생활을 접고 10년 만에 아빠와 함께 연고도 없는 낯선 지방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심리 상담을 받으며 신경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했고그 어느 때보다 깊은 우울과 무기력감에 허우적거리며 나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도 했다가 치가 떨리게 혐오하기도 하면서 여기저기 찢고 꿰맨 자국이 많이 남은 시기였다고.

침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서죽어가는 벌레처럼 울면서도 어째 거의 매일 손바닥만 한 노트에 일기는 썼다고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하며 아무런 기대도 없이 쓴 일기가 이렇게 책으로 묶여 나오니어쩐지 일기장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그래서인지 일기에는 작가님의 주위를 맴도는 하트들이 자주 등장한다그래서 이 일기들이 멋있었다일기라는 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취하고마음에 들지 않은 이야기들은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것 아닌가타인의 일기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일기에는 그래왔기 때문이다혼란스럽고 뜻대로 되지 않는 미운 마음을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을 계속해서 해 나가는 일책이 된 일기는 하루아침에 책이 된 것이 아님을 다시금 깨달았다.

   


 

제일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일기였다작가님은 수에 정말 취약해서수치화 되는 모든 것에 전혀 감을 잡지 못한다고그림을 그리는 데 정확히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도 모른 채 프리랜서가 되니시간이 부족해 새벽까지 작업을 했고 순식간에 생활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고처음으로 작업하는 시간을 재어보니 모든 일이 본인이 예상한 시간의 3-4배가 더 걸렸다고작업에 들어가기 전 준비하는 시간을 간과하기도 했었고본인의 단점과 쉬는 시간 그리고 다양한 변수를 감안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고그래서 요즘은 일하기 전이 일이 어느 정도 걸릴지 가늠해보는데 그때마다 기가 차서 웃음이 난다고알게 되었다고 바로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조금씩 조금씩 고쳐나가고 있다고.

 

이 내용이 담긴 그림일기가 정말 귀여웠고(내 이야기 같아서 정곡이 찔렸다는 건 비밀이다), 이 그림일기에 덧붙은 글에서 배운 것이 있어서 마음이 갔다.

 

조각을 모으는 시간을 간과해왔던 것 같다.

조각을 모으는 일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딱히 뭐라 설명하기도 힘드니까.

그래서 늘 딴짓했다라거나 놀았다’, ‘아무것도 못 했다라고 말해왔는데

요즘은 그 조각을 모으지 않으면 이야기를 쓰고 그릴 재료가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할 말이 없어졌달까몇 번의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 이제는 조금 확신하듯 말할 수 있다.

딴짓하거나 놀고 있는 게 아니라 조각을 모으고 있다고그리고 이것도 알게 되었다.

조각은 모으기만 하면 안 된다는 걸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모은 조각에 먼지가 쌓이기 전에 뭐든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2018. 11. 08.

(p.41)

 

맞다조각은 모으기만 해선 안 된다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은 아니다그러나 평생 그리하며 살고 싶다고 마음먹은 이상작가님의 말마따나 모은 조각에 먼지가 쌓이기 전에 뭐든 만들어내자고 일기장에 옮겨 썼다.

 

프롤로그에서 이 일기가 어떤 효용이 있을지 아직도 고민이 많다고 하셨지만 내가 작가님의 일기를 통해 배운 것처럼이 책을 읽은 또 다른 이에게도 저마다의 효용이 있는 시간이었을 거라 믿는다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다시금 읽기를 쓰기 시작하였으니더할 나위 없는 효용이지 않을까.

 

너무 잘하는 것보다 다음에도 또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잘하는 것이 더 좋은 듯하다.

완벽해지려고 하지 말고적당히 잘해야 한다.

다음에도 또 할 수 있는 것이 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2018. 12. 22.

(p.72)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일기를 계속 쓸 수 있게적당히 일기를 쓰고 있다작가님의 다짐처럼 나 역시 살아감의 아름다움을 쉽게 가려버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p.s. 너무 귀여워서 덧붙이지 않을 수 없었던 그림일기.


조각을 모으는 시간을 간과해왔던 것 같다.
조각을 모으는 일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딱히 뭐라 설명하기도 힘드니까.
그래서 늘 ‘딴짓했다’라거나 ‘놀았다’, ‘아무것도 못 했다’라고 말해왔는데
요즘은 그 조각을 모으지 않으면 이야기를 쓰고 그릴 재료가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할 말이 없어졌달까. 몇 번의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 이제는 조금 확신하듯 말할 수 있다.
딴짓하거나 놀고 있는 게 아니라 조각을 모으고 있다고. 그리고 이것도 알게 되었다.
조각은 모으기만 하면 안 된다는 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모은 조각에 먼지가 쌓이기 전에 뭐든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2018. 11. 08. - P41

너무 잘하는 것보다 다음에도 또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잘하는 것이 더 좋은 듯하다.
완벽해지려고 하지 말고, 적당히 잘해야 한다.
다음에도 또 할 수 있는 것이 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2018. 12. 22.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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