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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일은 아니지만 -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ㅣ 자기만의 방
홍화정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6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128/pimg_7777621862819212.jpg)
쉬운 일이 아니다. 써온 일기를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 작업을 하는 것도, 그렇게 만든 책을 세상에 선보이는 것도. 무엇보다 일기를 쓰는 일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기에는 단순히 있었던 일을 기록하기도 하지만, 외면했던 나를 마주하고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니까.
이 책의 제목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결국 해낸 홍화정 작가님의 4컷의 그림 에세이를 만난 건 지난 2019 서울국제도서전에서였다. 휴머니스트 부스에서 이 책을 보았다. 출간 전 만나볼 수 있는 따끈따끈한 기회였는데, 구매를 계획했던 책이 아니어서 마음에만 담아두고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책을 구매할 일이 생겼고, 망설임 없이 이 책을 골랐다.
표지에 담긴 저 귀여운데 울고 있는 하트들은 어떤 의미일까 싶었는데, 프롤로그에서 그림일기에 대한 사연이 소개되었다.
책이 된 원고는 2016년부터 2019년 1월 1일까지 쓴 일기에서 가져온 이야기들인데, 이 시기에 작가님은 서울 생활을 접고 10년 만에 아빠와 함께 연고도 없는 낯선 지방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심리 상담을 받으며 신경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했고,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우울과 무기력감에 허우적거리며 나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도 했다가 치가 떨리게 혐오하기도 하면서 여기저기 찢고 꿰맨 자국이 많이 남은 시기였다고.
침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서, 죽어가는 벌레처럼 울면서도 어째 거의 매일 손바닥만 한 노트에 일기는 썼다고.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하며 아무런 기대도 없이 쓴 일기가 이렇게 책으로 묶여 나오니, 어쩐지 일기장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그래서인지 일기에는 작가님의 주위를 맴도는 하트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이 일기들이 멋있었다. 일기라는 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취하고, 마음에 들지 않은 이야기들은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것 아닌가. 타인의 일기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일기에는 그래왔기 때문이다. 혼란스럽고 뜻대로 되지 않는 미운 마음을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일. 이 쉽지 않은 일을 계속해서 해 나가는 일. 책이 된 일기는 하루아침에 책이 된 것이 아님을 다시금 깨달았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128/pimg_7777621862819210.jpg)
제일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일기였다. 작가님은 수에 정말 취약해서, 수치화 되는 모든 것에 전혀 감을 잡지 못한다고. 그림을 그리는 데 정확히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도 모른 채 프리랜서가 되니, 시간이 부족해 새벽까지 작업을 했고 순식간에 생활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고. 처음으로 작업하는 시간을 재어보니 모든 일이 본인이 예상한 시간의 3-4배가 더 걸렸다고. 작업에 들어가기 전 준비하는 시간을 간과하기도 했었고, 본인의 단점과 쉬는 시간 그리고 다양한 변수를 감안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고. 그래서 요즘은 일하기 전, 이 일이 어느 정도 걸릴지 가늠해보는데 그때마다 기가 차서 웃음이 난다고. 알게 되었다고 바로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조금씩 조금씩 고쳐나가고 있다고.
이 내용이 담긴 그림일기가 정말 귀여웠고(내 이야기 같아서 정곡이 찔렸다는 건 비밀이다), 이 그림일기에 덧붙은 글에서 배운 것이 있어서 마음이 갔다.
조각을 모으는 시간을 간과해왔던 것 같다.
조각을 모으는 일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딱히 뭐라 설명하기도 힘드니까.
그래서 늘 ‘딴짓했다’라거나 ‘놀았다’, ‘아무것도 못 했다’라고 말해왔는데
요즘은 그 조각을 모으지 않으면 이야기를 쓰고 그릴 재료가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할 말이 없어졌달까. 몇 번의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 이제는 조금 확신하듯 말할 수 있다.
딴짓하거나 놀고 있는 게 아니라 조각을 모으고 있다고. 그리고 이것도 알게 되었다.
조각은 모으기만 하면 안 된다는 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모은 조각에 먼지가 쌓이기 전에 뭐든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2018. 11. 08.
(p.41)
맞다. 조각은 모으기만 해선 안 된다. 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평생 그리하며 살고 싶다고 마음먹은 이상, 작가님의 말마따나 모은 조각에 먼지가 쌓이기 전에 뭐든 만들어내자고 일기장에 옮겨 썼다.
프롤로그에서 이 일기가 어떤 효용이 있을지 아직도 고민이 많다고 하셨지만 내가 작가님의 일기를 통해 배운 것처럼, 이 책을 읽은 또 다른 이에게도 저마다의 효용이 있는 시간이었을 거라 믿는다.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다시금 읽기를 쓰기 시작하였으니, 더할 나위 없는 효용이지 않을까.
너무 잘하는 것보다 다음에도 또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잘하는 것이 더 좋은 듯하다.
완벽해지려고 하지 말고, 적당히 잘해야 한다.
다음에도 또 할 수 있는 것이 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2018. 12. 22.
(p.72)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일기를 계속 쓸 수 있게, 적당히 일기를 쓰고 있다. 작가님의 다짐처럼 나 역시 살아감의 아름다움을 쉽게 가려버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128/pimg_7777621862819211.jpg)
p.s. 너무 귀여워서 덧붙이지 않을 수 없었던 그림일기.
조각을 모으는 시간을 간과해왔던 것 같다. 조각을 모으는 일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딱히 뭐라 설명하기도 힘드니까. 그래서 늘 ‘딴짓했다’라거나 ‘놀았다’, ‘아무것도 못 했다’라고 말해왔는데 요즘은 그 조각을 모으지 않으면 이야기를 쓰고 그릴 재료가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할 말이 없어졌달까. 몇 번의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 이제는 조금 확신하듯 말할 수 있다. 딴짓하거나 놀고 있는 게 아니라 조각을 모으고 있다고. 그리고 이것도 알게 되었다. 조각은 모으기만 하면 안 된다는 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모은 조각에 먼지가 쌓이기 전에 뭐든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2018. 11. 08. - P41
너무 잘하는 것보다 다음에도 또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잘하는 것이 더 좋은 듯하다. 완벽해지려고 하지 말고, 적당히 잘해야 한다. 다음에도 또 할 수 있는 것이 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2018. 12. 22.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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