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서

 

 

   나는 저 발자국이 몸으로부터 아주 끊어져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몸은 없는데 무게만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그러나 저 발자국마다 당신이 서 있다면나는 영원히 당신을 떠날 수 없겠지요그래서 어떤 비는 지워진 밤을 위해 온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둥둥 떠내려가는 어둠이 상갓집 신발처럼 우리를 흩어놓는다고 느끼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취한 건 아닙니다.

 

   아아 정말,

 

   뭔가 밀실을 엿보는 기분이랄까마지막으로 관을 열었을 때반듯이 누운 아버지가 꼭 열쇠처럼 보였어요.

사람을 묻고,

   별들이 한바퀴를 돌면 세계의 단단한 지평선이 모두 열릴 것 같았어요.

 

   잘 들어갔다고,

   답했다.

 

   전철을 반대로 타고 여섯 정거장을 달렸지만 우리는 늘 전파의 거리를 줄이거나 늘이면서 잘못 든 길을 달리는 중이고,

   어디에 내려도

   거기가 도착지는 아니니까잘 들어갔다고 믿으며

   돌아간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만 잘 지낼 수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서로를 기억하는 사람 또한

   우리라서,

 

   아침이면 차창을 스쳐가는 나무들이 단 한번 죽음을 주인으로 모시고

   밤처럼 꼭 감은 눈에서 떨어지는 이슬 한방울씩 받아주는 때가 온다.



- 신용목 시집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중에서 시 <우리라서>전문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만 잘 지낼 수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서로를 기억하는 사람 또한

우리라서,



201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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