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춤추고 싶다 - 좋은 리듬을 만드는 춤의 과학
장동선.줄리아 크리스텐슨 지음, 염정용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나의 인생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땐뽀걸즈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이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티파니(제니퍼 로렌스)는 팻(브래들리 쿠퍼)에게 헤어진 아내와의 재결합을 도와주는 대신, 자신과 함께 댄스 경연 대회에 참가해달라는 제안을 건넨다. 처음엔 그저 댄스 경연을 위한 춤을 준비하던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고, 춤을 추며 보내는 하루하루가 점차 즐거워진다. 그러는 사이에 각자가 가진 상처는 조금씩 옅어진다. silver lining, 구름의 흰 가장자리 아래서.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전, ‘댄스스포츠대회를 앞두고 있는 거제여상 열여덟 땐뽀반학생들의 유쾌발랄 성장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땐뽀걸즈’. 땐뽀반의 수장 이규호 선생님의 지도 하에 아이들은 차차차와 자이브를 배우며, 둘도 없을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을 보낸다. KBS 스폐셜판 나레이션처럼, 세상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나를 오롯이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땐뽀걸즈 곁을 지나간다. 자이브의 흥겨운 리듬에 맞춰서.

 

문득 이 두 편의 영화가 떠올랐던 것은, 이 책 뇌는 춤추고 싶다속 구절 때문이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우리는 택시기사에게 요금을 지불했다. 그때 택시기사가 독일어를 할 줄 알며, 우리가 나눈 이야기의 일부를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일간의 학술대회를 마치고 나자(우리가 서로 토론을 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또 춤도 추었던 그 8일간), 60세쯤 되는 그리스인 택시기사가 그것을 이렇게 요약해서 말했다. “춤추기는 멋진 일이죠! 사람들은 늘 웃음이 최고의 약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춤추기가 그렇죠. 웃음은 춤을 출 때 그냥 덤으로 받는 겁니다!”

(p.351-352)

 

택시기사의 말마따나 춤추기는 멋진 일이고, 웃음은 그냥 덤으로 받기도 하는 춤에 관해 8일간 열렬히 떠든 두 사람이 있다. 시즌2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뇌과학자 장동선과 뇌와 춤의 심리학적, 신경과학적 관계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온 신경과학자 줄리아 F. 크리스텐슨이다. 두 사람은 그리스의 에기나섬에 있는 아폴로 호텔에서 열린 신경과학과 관련된 학술대회에서 처음 만났고, 대화는 바로 춤에 관한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호텔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추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춤을 추면 대체 왜 저렇게 행복해질까? 춤을 추면 더 건강해질까? 혹은 더 똑똑해질까? 둘은 한참 동안 이런 대화를 나눈 후에 수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먼동이 틀 때까지 춤을 추었고, 아침에 잠깐 눈을 붙인 다음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여드레 밤낮으로 학술 토론과 춤 사이를 번갈아 오갔고, 마침내 모든 것이 하나로 묶이게 되었는데 당시 여드레 밤낮 동안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주제와 춤에서 이 책 뇌는 춤추고 싶다의 중심이 되는 여덟 개의 장이 탄생했다고 한다.

 

나를 사로잡는 리듬인 1솔로 댄스로 시작해서 내게는 어떤 춤이 어울리는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9춤 고르기가 담겨있는 이 책은 범주가 뇌과학이지만, 워낙 유쾌하고 춤에 관련된 여러 이론들(뇌과학, 신경학 등)이 적재적소에 나와서 읽기에 부담 없는 책이다.

 

우리가 자료 조사를 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유튜브 동영상에서도 당김음의 마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 명의 이탈리아인이 자동차에 앉아 있었다. 카메라는 앞쪽에서 그들을 찍고 있었다. 그들은 이탈리아인 특유의 과도한 몸짓을 해 가며 최근에 나온 여름철 히트곡인 <데스파시토Despacito>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들은 어디서나 그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을 끔찍해했다. 또한 사람들이 그 노래가 나오기 무섭게 춤을 추는 것 역시 싫어했다. 그들은 그 노래가 실패작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때 라디오에서 다음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곡은 바로……, 바로 <데스파시토>였다. 그 이탈리아인들은 그 노래에 대해 불평을 하는 동안에도 중간중간에 끊임없이 따라 부르며 머리를 흔들고 즐기기 시작했다. 그 노래가 실제로는 한심하다고 주장하면서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히트곡이 나오고 우리들 모두는 언제부턴가 더는 듣고 싶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문득 노래를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p.40-41)

 

구절 속에 영상 주소가 쓰여 있어서 찾아봤는데, 상황 설명을 듣고 봐서 그런지 재밌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던가. 이탈리아 특유의 손짓을 해가며 난 이 노래 불호야 하는데 데스, , 시토- 하는 후렴구가 나올 때마다 따라 부르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영상의 끝부분에는 이 상황이 연출임을 보여주는데, 어쩐지 엄마미소 짓게 된다. 그래, 이런 마성의 노래가 있지 있어. 이를테면 수능금지곡이라 부르는 U R Man (요즘으로 말하면 픽미나 나야나가 있겠지만 내겐 이 노래가 최고다) 같은. 당김음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고, 너무 들어서 지겨울 정도인데도 막상 또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듯 듣게 되는 노래들. 최근에는 야놀자 CM송이 그랬다. 하도 들어서 지겨운데 어느 순간 입에 붙어서 야야야야야놀자 하고 있는 그 노래. 애기가 이거 들으면 울다가도 뚝 그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찾아보니, 가만히 있던 돌잡이 아기 얼굴에 웃음꽂이 피고 흥겹게 춤을 추는 영상이 있었다. , 그 이야기가 정말 사실이었구나 했다.

데스파시토에 이어 바로 다음 챕터로 '모든 아기는 춤꾼'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야놀자송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이 딱 이러해서 재밌었다. 어떤 리듬을 듣고 춤으로 따라 하려는 충동은 이미 신생아의 뇌에 완전히 준비되어 있는 상태고, 아기들은 춤을 출 때 미소를 지었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이 밝혀냈다는 글을 읽고 있으면 새삼스럽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뇌과학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오스트레일리아의 웨스턴시드니 대학의 캐서린 스티븐스와 그 팀은 일련의 연구를 통해 춤을 지켜보는 사람도 매우 강한 정서적 자극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댄서가 무대에서 날 듯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때 우리의 몸도 함께 흥분을 느낀다. 프랭크 폴릭은 동료인 커린 졸라와 장선희와 함께 특히 이 문제에 대해 깊이 파고들었다. 2011년과 2012년에 이들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댄스를 즐겨 구경하는 사람들의 뇌에서는 근육운동과 관련된 기억 과정이 그들이 그 춤동작을 직접할 때와 똑같이 단련된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다.

(p.322)

 

위 구절을 읽고서 다짐하게 된 것이 하나 있는데, 내년엔 춤에 관련된 공연을 챙겨보자는 것이었다. 당장 행동에 옮겨서,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뮤지컬을 예매하는 사이트에 접속해 발레단이나 무용단의 공연을 살펴보았다. 흥미로운 공연이 많았다.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시도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땐뽀걸즈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땐뽀반의 단장 혜영이는 이렇게 말했다.

 

 

 

 

 

 

춤추기 전은 진짜 (사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고 공부에도 그렇게 흥미가 없었고

뭔가 완성되는 느낌? 내가 점점 진짜 박혜영인 것 같은 느낌?”

 

내가 점점 진짜 박혜영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혜영이의 말은 아래 구절과 맥락을 같이한다.

 

대부분의 춤들은 <더티 댄싱>에서처럼 무더운 여름 한 철에 익혀지지는 않으며, 모든 춤이 더티 댄싱일 필요는 없다. 당신 자신의 템포, 자신의 리듬에 귀 기울이라. 미하엘 엔데는 이것을 자신의 동화책 모모에서 특별히 아름답게 표현했다. “음악은 아주 멀리서부터 왔지만 나의 내면 아주 깊숙한 곳에서 울렸지.” 당신의 내면에 들어 있는 완전히 자기만의 음악을 발견하라. 그리고 거기에 맞춰 춤을 추라.

(p.352-353)

 

어쩌면 혜영이는 땐뽀를 하면서 자기만의 음악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내면 아주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음악을. 그렇게 발견한 음악은 이후에 어떤 일이 있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춤을 통해 몸에 남았고, 추억에 남았으며, 사는 의미를 깨닫게 해준 힘이 되었으니까.

 

이 책의 저자이자 춤의 힘을 오래전부터 아내에게 전파하고 싶었던 남편, 장동선 박사는 책의 말미에 이렇게 썼다.

 

나에게 이 책은 무엇보다 아내 유진에게 함께 춤추러 가자고 설득하려는 시도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것을 느끼며, 춤을 추면서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을 잊는다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다. 나는 이 느낌을 아내와 함께 나누고 싶다. 부부로서 춤을 추며 늙어 가면 좋겠다. 이것이 나의 꿈이다. 이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유진, 당신에게 바친다.

(p.390-391)

 

아아, 이쯤 되니 내가 읽은 책의 장르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뇌과학 책을 읽은 것인가, 춤에 관한 유쾌한 에세이를 읽은 것인가, 아니면 두 장르의 탈을 쓴 사랑 고백 편지를 읽은 것인가. 하하. 내게도 이런 춤이, 이런 사랑이 오기를 바라며 기쁜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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