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달다. 어제는 지랄맞았지만,
달다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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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제목이 참 청량하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지랄맞았지만, 오늘은 달다.’를 뒤집어서 오늘은 달고, 어제는 지랄맞았다고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어린 내게 좋은 대학에 가면 행복이 온다고 했다. 대학생이 된 내게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면 행복이 온다고 했고, 직장인이 된 내게는 결혼을 하면 행복이 온다고 했다. 나는 알려준 대로 행복을 위한 모든 패를 완벽하게 사용했다. 목적지처럼 보이는 막다른 길에 이르러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행복은 어디에 있죠?”

메아리조차 없다. 어른이 되어버린 내게 대답해줄 어른은 더 이상 없다. 나는 그 자리에 엉거주춤 서서 길을 잃은 아이처럼 울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물었다.

나는 어디로 가면 행복하니?”

미련하게도 이제서야.

저기 숲길이 예쁘니까 구경하면서 갈까?”

나 숲 좋아해.”

알아.”

남의 말만 듣느라 소홀했던 내게 처음으로 행복을 물었다.

 

프롤로그의 일부다. 나 역시 자주했던 생각인지라 공감하며 읽고 있는데, “나 숲 좋아해.” 하고 알아.”라고 받아치는 나와 나의 대화가 마음을 울렸다. 프롤로그의 제목은 행복을 묻다’. 행복은 그 누구도 아닌 내게 묻는 것이고, 그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데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표지의 일러스트도 귀엽고 책의 색감도 사랑스러워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웬걸, 뜻밖의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작가 달다는 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 직장동료를 비롯해 일면식 없는 다른 사람들까지 따뜻한 시선으로 관찰한다. 때로는 통통 튀는 웹툰으로 때로는 사뭇 진지한 글로 풀어내는데, 그 완급조절이 마음에 들었다. 지난 영화제 때 본 오늘도 평화로운처럼 B급 감성 가득한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가도, 가족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어쩐지 더 눈물이 나는 덤덤함.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하나만 더 풀자면 이 구절이다.

 

나는 줄곧 휑한 무대에 덩그러니 나를 세웠다.

관중들의 반응을 살피며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다.

영악한 머리로는 적절한 타이밍을 살펴

멋들어지게 폭죽을 터뜨려 박수를 받아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나의 무대는 위기를 맞았다.

환호 없는 무대는 초조했고 흩어지는 연기처럼 무의미했다.

그리고, 나는 달리기를 멈추었다.

 

전부였던 회사부터 어설픈 자기계발까지

끊임없이 휘두르던 채찍을 내려놓았다.

 

돌아서 본다.

무정하게 멀리도 왔다.

질주해온 길 끝에 아스라이 점처럼 작은 내가 보인다.

지금의 나는 두 팔을 벌리고 섰다.

저만치 따라오는 내 영혼을 힘껏 안아주려고.

 

끌어안은 그의 귀에다 속삭이듯 부탁도 해볼 참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도 나의 곁을 지켜달라고.

나의 진짜 관객이 되어달라고.

 

(p.230-231 파트 5, 08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

 

글의 아래에는 인디언의 그림과 이런 글이 실려있다.

인디언들은 광야를 달리다 멈추어 서서 달려온 길을 바라본다고 한다.

미처 따라오지 못한 자신의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내게도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면, 이처럼 좋은 책과 좋은 영화를 보는 시간일 것이다. 시간을 내어 책을 읽으면서, 바쁜 일상에 미처 따라오지 못한 내 영혼을 기다린다. 역시 시간을 내어 영화관에 가서, 좋은 영화를 보고 나와서 그 여운을 곱씹으며 영혼을 기다린다.

 

오늘도 이어지는 무더운 여름밤, 미처 따라오지 못한 영혼이 내게 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방금, 아주 즐겁게 읽은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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