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not a drill" 이라는 타이틀로 미국 전역을 순회하고 있는 로저 워터스의 공연을 8월 30일에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보았다. 코로나 때문에 2, 3년 연기되었다가 이번에 겨우 열린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티켓을 실수로 이중 구매했다가 막판에 가까스로 되팔기도 했고, 재정적으로 쪼들리는 와중에 미국까지 가서 공연을 보아야 하나 하는 심적 갈등도 있고 해서 끝까지 맘이 편하지 않았다. 


시간에 맞춰 공연장 앞에 도착해 보니 이스라엘 국기를 든 열 명 정도의 유대인 사람들이 반-로저 워터스 시위를 하고 있었다. 한국의 태극기 부대와 비슷한 양상이다. 좋든 싫든 로저 워터스는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 억압 정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드문 서구 인사 중의 한 명이다. 유대인 단체의 압력으로 공연이 취소되거나 공연 광고 계약이 철회되거나 하는 불이익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은 그에게도 훈장으로 치부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핑크 플로이드 출신의 전설의 록 스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 않았더라면 로저 워터스도 음악계에서 쉽게 퇴출되었을 것이다. 



공연에 대한 나의 평가는 이중적이다. 첫째, 80에 가까운 나이를 생각한다면 보컬적으로 무난한 공연을 보여주었다. 둘째, 정치적 메시지가 강조될 것이라고 예고는 되었으나 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든다. 허다한 자막 캡션이나 이미지 등의 사용이 연주를 감상하는데 방해가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로저 워터스의 나이로 보건대 이번이 마지막 투어가 될 것 같다. 세트 리스트의 끝 곡이 "Outside the Wall"인데, 마치 노장의 작별 인사를 암시하는 듯한 가사이다. 공연 전에 유튭으로 이 곡을 아내에게 들려줬더니, 아내 왈 벌써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하더라. 문제는 정작 공연장에서는 전혀 눈물 날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찜통 같은 맨하튼 지하철 역에서 도무지 오지 않는 지하철을 기다리다, 결국 지하철을 타고, 어둡고 위험해 보이는 브룩클린 동네의 숙소에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런 것들로 짜증이 난 나는, 고집 센 노인네가 마지막 투어라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 하고 싶은 얘기 다 늘어놓는 식으로 공연을 했다고, 절제와 쿨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고 투덜댔다.


그렇게 공연 리뷰를 찾아보다가 CNN 인터뷰를 발견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매니저이고 나의 아티스트가 중요한 투어를 앞두고 이런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면 나는 아마 심각한 좌절감에 빠졌을 것이다. 여튼, 나는 더 이상 서구를 쿨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로저 워터스는 쿨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지구 최강의 미국 군대와 한국 군대가 북한의 앞바다에서 함포를 쏘아대며 군사 훈련을 하는 것은 단순한 연습이라 하고, 북한이 똑같은 장소에서 미사일 몇 발을 쏘는 것은 도발이라고 한다. 양심상 북한의 미사일 발사 행위를 도발이라 부르기를 거부하는 아나운서가 있다면 어떨까? 마찬가지로 서방 언론에서도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한 원인으로 나토의 동진 확장 정책을 언급하는 것은 금기이다. 그리고 그 금기를 깨는 행위는 용기있는 것이거나 고집 센 것이거나 순진한 것이거나 등등 일 것이다. 사회자가 이 모두를 포괄해서 트러블 메이커로 칭하고 있듯이 말이다.


이 인터뷰를 보고나서 나는 더 이상 로저 워터스의 공연에 대해 불평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의 사회가, 어떤 사안에 대해 아무런 금기 없이 상식과 이성에 기반하여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 질 수 있는 사회라면, 로저 워터스가 이렇게나 수다스러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가 젊은 시절에 썼던 암울한 내용의 가사들은 근래에 들어 더욱 더 적실성을 갖는 듯 하다. 불행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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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삼 년 전에 로저 워터스의 미국 투어, 뉴욕 공연을 덜컥 예매해 버렸다. 코로나 때문에 두 어 번 연기되었다가 이번 여름에 드디어 투어가 시작되었고, 겸사 겸사해서 생전 처음 미국이라는 나라에 가 보게 되었다. 


8/28:

저녁에 뉴욕에 도착했다. 숙소는 브룩클린에 잡았다. 

8/29:

아침에 브룩클린에서 맨하탄으로 넘어가서 인디언 뮤지엄에 갔다. 거기서 <운디드 니에 나를 묻어주오>를 샀다. 

점심에 파이낸셜 관련 가이드 투어를 했다. 

저녁에 뭘 했을까? - 적어 놓지 않아서 기억이 안난다:<

8/30:

아침에 모던 뮤지엄에 갔다. 

점심 즈음부터는 센트럴 파크에서 놀았다. 

저녁에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로저 워터스의 공연을 보았다.

8/31:

어제 너무 무리했었기 때문에 쉬엄 쉬엄 가기로 했다.

아침에 록펠러 센터에 갔었는데 별 감흥이 없었다.

뉴욕 공공 도서관 열람실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영국에서 가져간 책들을 읽었다. 그러다가 옆에 붙어 있는 브리언트 공원에서 책도 읽고 수다도 떨면서 느슨한 하루를 보냈다.

9/1:

아침에 할렘 가이드 투어를 했다. 많은 것을 배웠다. 혹 뉴욕 여행 가시는 분들이 있으면 추천할 만한 일정이다.

오후 4시 10분 뉴욕 메츠와 엘에이 다저스의 경기가 있어서 시티 필드에 가서 관람했다. 평일 낮 경기임에도 90 퍼센트 정도 좌석이 가득 찼다. 다저스 선발 투수가 커쇼였지만 경기는 메츠의 역전승으로 끝났다.

9/2:

아침에 휘트니 뮤지엄에 갔다. 아내가 호퍼의 팬이다. 

점심 즈음에 하이 라인을 따라 걸었다. 폐쇄된 기차길을 정원처럼 꾸며놓은 고가 도로(인도)이다.

오후엔 주로 뉴욕대 근방에서 놀았다. 어떤 흑인 아저씨가 길거리에 책을 쌓아놓고 파는 데서 이러 저러한 책을 샀고, 미국의 유일한 대형 서점이라는 스트랜드에서 메를로-퐁티의 책과 스피노자에 대한 책을 샀고, 주변 일본 식당에서 라면을 먹었다.  

9/3:

아침에 그리니치 빌리지 가이드 투어를 했다. 그저 그랬다.

점심 이후에는 주로 워싱턴 스퀘어 가든에서 놀았다. 사람들 공연하는 것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저녁에 블루 노트라는 재즈 바에서 공연을 보았다. 낮에 보았던 길거리 뮤지션들과 프로페셔널들 사이의 차이란!

9/4:

아침에 유대인 관련 뮤지엄에 갔다. 마스크를 써야 해서 근처 차이나 타운을 헤매며 마스크를 사갔는데, 관람은 가이드 투어 형식으로만 진행된다 하고, 등등으로 나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들이 좀 있어서 관람을 않기로 하고 그냥 나왔다.

빈 시간을 메우려 구겐하임 뮤지엄에 갔다. 세실리아라는 페루 아티스트와 칸딘스키의 작품이 나선형 회랑을 따라 전시되어 있었는데, 특히 전자는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 아다시피, 어떤 미지의 문화권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열쇠를 제공해 주는 사람들을 우리는 예술가라고 부른다. 

밤거리를 헤매다가 어떤 중고 서점에서 <2014: The Best American Short Stories>라는 책을 샀다. 당대적 고민에 대한 미국의 사정을 듣고 싶었다고나 할까?(즉, 소설의 종말에 대한?) 윈도우 전시대에 휴버트 셀비의 <브룩클린으로 가는 출구>가 전시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책을 샀어야 했다. 그렇게 전시되어 있는 책들은 비쌀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예 살 생각을 안한 것이 아쉽다. 

9/5:

마지막 날. 비행기 시간이 저녁 8:10이기 때문에 시간이 꽤 있다.

오전에 스트랜드 서점에 갔다. 그 동안 미국 여행하면서 배우고, 느낀 것과 관련된 주제의 책을 사고자 했다. 휴버트 셀비의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출구>를 찾았으나 없었다. 대신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을 샀다. 랭스턴 휴즈의 책 등등을 샀다.

나머지 시간은 브리언트 공원에서 책을 읽으며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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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에 대한 하이데거의 강의록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고, 다음과 같은 말이 그 마지막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었다. 


"... one can trust Kant fully. In Kant as in no other thinker one has the immediate certainty that he does not cheat. And the most monstrous danger in philosophy consists in cheating, because all efforts do not have the massive character of a natural scientific experiment or that of an historical source. But where the greatest danger of cheating is, there is also the ultimate possibility for the genuineness of thinking and questioning. The meaning of doing philosophy consists in awakening the need for this genuineness and in keeping it awake." 


여기에 복잡한 말을 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자기 기만과 같은 현상이 없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지금 어떤 절대적 의미에서의 믿음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이데거가 말하고 있는 것은 철학함에 있어 어떤 기준점일 것이다. 깊이와 담백함. 깊이와 담백함이 꼭 같이 가는 것은 아니지만, 깊이가 없는 담백함이란 적어도 철학함에 있어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리라. 여튼 하이데거는 이를 솔직함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하고 있다. 이때의 솔직함이란, 사태가 너무도 복잡하여 거짓으로 꾸며 말하나 솔직하게 말하나 누구 하나 눈치 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솔직함을 유지하는 것을 뜻할 것이다. 칸트가 그런 철학자에 속한다는 점에 나도 동의한다. 그럼 하이데거는 어떠한가? 그와 당대의 사람 중에는 그를 속을 모르겠는 사람, 심지어는 음흉한 사람으로까지 치부하는 이까지 있었다. 그의 그러한 성격이 그의 철학에 반영되지 않을 방법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나는 그의 철학에 그리 동정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격적 결함과 스타일상의 허세, 혹은 과장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서 어떤 담백함, 물론 깊이가 수반되는 담백함을 발견한다. 그것이 그를 거듭 거듭 읽게 만든다. 


매우 가문 2022년의 여름에 내가 주로 어떤 책들을 읽고 있었나를 나중에 기억하기 위해 이렇게 적어둔다. 내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두 명의 철학자, 하이데거와 모한티의 책들을 주로 읽고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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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김정희 기념관에서 산 세한도 다포. 애초부터 다포로 쓸 일은 없을 것 같았지만 종이보다는 오래 가겠지 싶어 그냥 다포로 샀다. 어디다 쓸까 하다가 책장에 휘장처럼 걸어놓고 있다. 글쎄... 나의 정신 세계(그런 것이 있다면!)의 어떤 상태같은 것을 이 그림이 반영하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왜 샀을까... 이 위화감을 어찌 할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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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만이었고, 아마 이만한 기간 동안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이 아니라 나 자신일 것이다. 어느 곳을 가든 누추한 곳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모습에... 흠 이렇게 말해도 될런지... 나는 어느새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송광사에서 지눌의 '진심직설'을 샀고, 제주 김정희 유배관에서 세한도 다포도 샀지만... 영국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런 고도로 형식화한 물건들에 살짝 정이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형식화에 이미 지쳐버렸는데 고도로 형식화한 것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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