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카르납의 " An Introduction To The Philosophy Of Science"를 읽기 시작했다. 카르납의 강의를 편집한 책이란다. 서문에서 편집자가 "이 책에 담긴 모든 아이디어는 다 카르납의 것이다"라고 한 대목에서 난 깜작 놀랐었다. 그렇다면 역으로 그 문장들은 상당 부분 편집자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 있으므로. 아니, 철학자의 책의 문장을 편집자가? 쇼펜하우어가 알까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편집자가 마틴 가드너란다. 카르납이 위대한 철학자이긴 하지만 영어가 모어가 아니다보니 마틴 가드너같은 탁월한 작가에게 문장 기술의 상당 부분을 일임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책이 상당히 매끈하게 읽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더라는 이야기.

오늘 첫 장을 읽었다. 30장까지 있다. 시간이 무섭게 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시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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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끝나고 사인회 하는 장면)


어제(일요일) 나꼼수 영국 공연을 다녀왔다. 토요일 런던 공연을 가려고 했었는데 예약이 늦어 매진이 되어 버려서 일요일날 나름 먼 길을 달려 옥스포드 공연을 봤다.


나는 나꼼수를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같이 간 친구들과 나)는 이 험난한 시절에 나꼼수 팀이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이분들을 응원해 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옥스포드에 간 것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나꼼수 팀이 얼마나 열심히 취재 활동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용감하게 일을 벌이고 있는지에 대해 찬탄과 걱정을 나누었다. "연말 대선에서 정권이 바뀔까요?"라는 질문에 나꼼수 팀은 "바뀌지 않으면 우리 정말 잡혀가요." 라고 하더라.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그 말이 진담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이 분들을 지켜주어야 한다. 이 분들이 지금 우리를 지키기 위해 홀로 애쓰고 있듯이... 짠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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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2-05-28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꼼수 팀이 영국까지 갔군요. 년말 대선에는 바뀌어야 하는데 요즘 진보진영이 워낙 어수선해 좀 불안하네요.

weekly 2012-05-28 23:0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질답 시간에 그 얘기도 나왔었습니다. 통진당 문제가 대선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는가. 김어준씨 얘기로는 별 영향이 없을 거라 하네요. 꽤 확신을 갖고 말씀하시던데 자세한 얘기는 뉴욕타임스에서 하겠답니다. 제가 봐도 총선은 몰라도 대선은 큰 영향이 없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동안 쌓아온 진보 정당의 기반을 파괴하는 사건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으리라는 거겠죠. 총선에서 지역구는 민주당 계열을 찍고 정당 투표는 진보 정당에 하는 유권자가 꽤 많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진보 정당이 그렇게 얻어온 표를 많이 잃게 되리라는 것은 뻔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윈저 성 근처에 있는 롱 워크 공원(The Long Walk Park)이다. 어제 저 공원 어딘가에 누워 종일 책을 읽고 볶은 밥을 먹고 포도주를 마셨다. 너무 좋았다. 프랑스에 카폐나 광장이 있다면 영국에는 공원이 있겠다 싶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영국의 공원이 그리워 지겠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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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스. 비비씨에서 하는 드라마다. 요즘 이스트엔더스 대신 이걸 보고 있다. 이스트엔더스를 더 안보기로 한 이유는, 이거 보지 말라고 만류하는 사람이 있었고, 감내하기 싫을 정도로 찌질했고, 등장 인물들의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ya" 같은 촌스런 어미가 내 혀에 달라 붙을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닥터스는 잔잔하고 따뜻한 드라마다.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등장 인물이 벌써 셋이나 된다. 사회적 이슈들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심각할 정도로 깊게 다루지도, 소재주의식으로 피상적으로 다루지도 않는다. 어제 에피소드를 보면서는 그 균형 감각에 감탄했다.

닥터스에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노트 갖다 놓고 공부하면서 보고 있다.

내 생각에 영어 공부하기에는 다운톤 애비가 가장 좋은 것 같다. 20세기 초반의 영국 귀족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인데 아주 깨끗한 발음의 영어를 들을 수 있다. 심지어 하인들도 깨끗한 발음을 구사한다. 

나는 다운톤 애비를 본 후 영어 낭독 연습을 하곤 하는데, 오늘 문득 내 발음이 재수없다고 느껴졌다. 다운톤 애비에서 들은 억양이 내 혀에 묻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 하나.

나이가 들면 새로운 언어를 익히기 쉽지 않다고들 한다. 이유야 여러 가지를 댈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말하자면 "재수없어서" 때문인 것 같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내 억양이 영국 사람을 닮아간다고 치자. 그런데 앞에 한국 사람이 딱 서 있다면? 그 앞에서 영어를 말할라 치면, 간단한 단어 하나를 말할 때라 해도 나의 발음은 이전의 딱딱한 발음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네이티브들의 억양을 흉내내는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나의 발음은 또 무너져 버린다. 

영어를 집중적으로 익히다 보면 리듬이 들리는 때가 오는 것 같다. 리듬이 들리면 그걸 흉내낼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 문제는 이렇다. 이걸 흉내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아이들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흉내내는 게 당연한 것이니까. 어른들은 이런 문제 앞에서 고민을 한다. 이런 것 흉내내기가 남사스러운데... 이런 표현 한번 써먹어 보고 싶긴 한데 좀 창피해서리... 이렇게 머뭇 머뭇하는 한국 아저씨를 딴 나라 사람들은 "샤이"하다고 표현하는 것 같다. (음... 방년 18세 브라질 아가씨가 오늘 나더러 샤이하다고 한 것 때문에 이런 말 하는 건 아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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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2-05-25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동감합니다. 저도 술 한잔 먹으면 중국어가 좀 나오는데 회사에 있으면 말이 어눌해져요.
드라마가 언어 공부에 좋기는 한데 고착되는 경향이 있는것 같아요. 저도 공부하는겸 신삼국지를 다 봤는데 중국직원들이 제가 쓰는 표현이 고어고 말투가 삼국시대 장군같다고 하기도 합니다.

weekly 2012-05-25 19:15   좋아요 0 | URL
예, 드라마가 그런 맹점이 있는 것 같아요. 닥터스라는 드라마의 등장인물 하나는 would I be right in saying that~ 라는 식으로 말을 굉장히 늘여서 하는데, 고지식하고 허식이 있는 캐릭터의 대사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생각은 하지만, 원어민이 아닌 이상 이런 걸 제대로 잡아낼 수는 없겠죠. 멋진 표현이라고 머리에 담아놓은 것이 때가 한참 지난 것이거나 아주 상투적인 것일 수도 있을 거구요...
 

어제부터 이곳에는 여름이 시작되었다. 친구들과 근처 펍(레스토랑?)에 갔다.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갑자기 날이 좋아진 때문일 것이다. 많은 여인네들이 어깨가 없는 드레스를 시원스레 입고 있었다. 잔잔한 강물 위에는 청둥오리(?)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우리는 몇번을 옮겨다닌 끝에 강가쪽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었다. 맥주와 피쉬 앤 칲스, 바베큐 갈비, 핫 윙 등을 마시고 먹었다.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음식이 다 비워질 즈음에도 날은 훤했다. 그러나 시간은 이미 9시 반을 넘기고 있었다. 우리는 헤어지면서 다음을 기약했다. 친구와 집으로 돌아오면서 음식 품평을 했다. 지난 주에 갔었던 펍이 음식 맛은 훨씬 낫더라... 요즘은 철학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가지 잡다한 일들(예를 들면 영어 공부)이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삶에 있어 최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언제나 철학이다. 내가 지금 영국에 있는 주요 이유도 그렇다. 마을에 어둠이 내리면 철학자의 시간이 시작된다... 어떤 철학자의 말이려니. 어둠을 기다리기엔 요즘 날이 너무 길다. 그만큼 시간은 빠르게 지나갈 것이다. 여름의 시작을 보면서 나는 스산한 가을 바람을 걱정한다. 까르페디엠. 음식을 추가로 주문하면서 우리는 핫 윙이 너무 맵더라고 카운터에 얘기하며 웃었었다. 카운터 사람도 웃으며 변명을 했다. 나는 입이 근질근질했다. 유 돈 노 더 데피니션 오브 스파이시... 그러나 이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음식 맛을 갖고 왈가왈부하다니! 일년 전 한국에서 용접사로 일할 때의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은 아니었다. 내가 충분히 현명하기를. 낮을 충분히 즐기고 밤엔 치열하게 싸우기를. 밤을 동경하여 낮의 명랑함을 피하지 말기를. 낮에 흠뻑 젖어 밤의 외로움에서 도피하지 말기를. 까르페디엠. 그것은 낮과 밤에 모두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낮과 밤은 우리의 날을 정의할 것이다. 그러니 카르페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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